문인화 수상작 90% 돈주고 수상 ‥ 국내 최대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리 얼룩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미술공모전에서 제자들의 작품을 미리 수상작으로 찍어놓고 각본대로 심사를 진행한 전·현직 미술협회 간부들이 경찰에 대거 적발됐다.

특히 협회 이사장 선거에서 특정 후보의 표를 늘리기 위해 자격 미달자를 회원으로 가입시키거나 중견 작가가 돈을 받고 공모전 출품작을 대신 그려주는 등 미술계 전반의 고질적인 비리가 이번 수사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6일 제자 또는 후배들로부터 돈을 받고 이들의 작품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입상시켜 준 혐의로 한국미술협회 전 이사장 하모씨(54) 등 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조모씨(60) 등 심사위원과 협회 간부,청탁 작가 등 4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실태

미술협회 고위 간부와 대회 심사위원들이 돈을 받고 미리 수상작을 선정해 왔다는 사실은 이미 미술계 안팎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문인화분과위원장 김모씨(53) 등 2명은 제자 등으로부터 5600만원을 받고 이들의 출품작을 입상시키기 위해 작년 4월16일 조씨 등 심사위원 11명 중 8명을 서울 서초동 A모텔로 불러 4박5일간 합숙시키면서 이들의 작품을 촬영한 사진을 미리 외우게 한 뒤 수상작으로 선정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제25회 미술대전 문인화 부문에는 2000여점의 작품이 출품됐으나 1차 심사에서 선정된 입선작 391점과 2차 심사에서 선정된 특선작 113점은 대부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미리 결정된 것이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당시 협회 간부와 심사위원이 미리 정해 놓은 작품이 전체 수상작의 90%를 넘는다는 추산이다.미술계에서는 "입선은 300만~500만원,특선은 1500만~2000만원,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으려면 상금 3000만원을 포기하고 3000만원을 더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경찰은 문인화 부문보다 규모가 큰 서양화나 한국화 등 다른 부문 심사에도 비리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협회뿐 아니라 일부 미술인들의 개인 비리도 여러 건 적발됐다.중견 화가인 유모씨(65)는 2005년 11월 어렵게 살던 무명 작가 윤모씨에게 접근해 "출품작을 대필해 특선에 입상하게 해주겠다"며 1500만원을 받고 한국화 1편을 그려줬으나 이 작품이 미술대전에서 낙선한 뒤에도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원인과 파장


심사 부정 비리는 선출직인 미술협회 이사장이 막대한 권한을 휘두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협 이사장 선거를 할 때마다 '20당 10락'(20억원을 쓰면 당선되고 10억원을 쓰면 떨어진다)이라는 소문이 도는가 하면 회원들의 회비 대납 의혹 등 '잡음'이 그치지 않아 후유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서울 인사동 청담동 등 화랑가에는 향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활기를 띠기 시작한 미술시장이 다시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준모 한국시각문화정책연구소장은 "미술대전 입상작가 작품이 대부분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미술대전이 '그들만의 리그'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며 "미술대전을 없애든지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인홍 한국미술투자 이사는 "타성에 빠져있는 미협 주최 미술대전의 개혁안 등을 이른 시일 내에 마련,시민단체(NGO)들도 참여하는 미술대전 운영 규정을 바꿔 미술시장에 미치는 파장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