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100만시대‥사각지대 아이들] (上) 국제결혼의 그늘

한국인 아빠와 필리핀인 엄마를 둔 형호(8·서울·가명)는 교실에서 한동안 '외톨이'로 지냈다.

짝꿍이 없었기 때문이다.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짝꿍이 있었다.

그런데 같은 반 아이 하나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형호의 짝꿍을 전학 간 아이의 자리로 옮겨 앉히면서 형호가 혼자 앉게 된 것.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형호 엄마가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듣지는 못했다.

자신이 외국인이라서 아이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고 한다.

형호 엄마와 상담한 외국인 지원단체는 "언론에 알리겠다"며 학교 측에 따졌고 그 뒤 형호는 다시 짝꿍이 생겼다.형호 엄마는 "형호가 한동안 '마음이 아프다'며 집에 와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이 외국인인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 중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벌써 1만3000여명에 달한다.

최근 1년 새 63%나 늘었다.그러나 학교도,선생님도 이처럼 빠르게 늘어나는 아이들을 끌어안을 준비는 안 돼 있다.

국제결혼 가정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진 교사들의 모임인 너나울의 김갑성 대표(부천 오정초등학교)는 "솔직히 이런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도 없고,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도 모르는 교사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은 상처를 입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서연(9·경기도 부천)이는 학교에서 엄마 얘기가 나올까봐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얼마 전 또래 아이와 말다툼 도중 "니네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잖아,베트남으로 가!"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다.

이후 서연이는 다른 아이들과 부딪힐 만한 일은 아예 하려고 하지 않는다.

서연이 담임 선생님은 "학기 초에 서연이를 불러놓고 '수업 시간에 베트남 문화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반 친구들에게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고 얘기해도 되겠니'하고 물었더니 아이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라"며 안쓰러워했다.

한국인 아빠와 스리랑카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유진(8·경기도 성남)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학교 다니기가 싫다.

'피부색이 까맣다'고 아이들이 놀린다는 것.유진이 엄마는 "약하게 보이면 (아이들이) 더 괴롭힌다.

용감해져야 한다"고 유진이를 다독였지만 자신도 속이 많이 상했다.

보건복지부가 2005년 한국인 아빠와 외국인 엄마로 이뤄진 국제결혼 부부 467쌍을 대상으로 자녀들의 집단 따돌림(왕따) 실태를 조사해봤다.

자녀가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는 17.6%였다.

왕따 원인으로는 '엄마가 외국인이기 때문'이 34.1%로 가장 많았다.

개인 성격과 상관없이 단지 '혼혈'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겪는 차별은 시작일 뿐이다.

사춘기인 중·고등학생이 되면 심리적 위축과 자신감 상실로 무단결석,가출,폭력 같은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심한 경우 마음에 쌓인 응어리가 사회를 향해 거칠게 폭발할 수도 있다.

대통령 직속 '빈부격차 차별시정위원회'도 2006년 국정과제 보고서에서 이 같은 우려를 지적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2006년 초.중.고교 재학생 통계를 보면 국제결혼 가정 아이들의 85%가 초등학생이다.

중학생(11.6%)과 고등학생(3.4%)은 아직 드문 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심각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북 장수초등학교의 사례는 사회와 어른들의 관심이 아이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국제결혼 가정 자녀가 전교생(337명)의 8.3%나 되는 이 학교는 국제결혼 가정과 한국인 부부 가정 사이에 1 대 1 결연을 맺어주고 외국인 엄마를 위한 한글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또 영어나 중국어를 하는 외국인 엄마를 어학시간에 보조교사로 참여시켜 이들과 학교와의 친밀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 학교 4학년인 민수는 필리핀인 엄마 레오노라씨(40)가 영어를 가르쳐서인지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했다.김갑성 대표는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부=김수언/주용석/류시훈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