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하다 안되면 취업? 누가 뽑아주기는 한대!

고려대 법대에 재학중인 김모씨(30)는 지난 2004년부터 사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3년 연속 1차 시험에서 낙방하는 수모를 겪자 마음이 흔들렸다. '이제는 공부를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김씨는 일반 기업 채용동향을 알기 위해 학교 취업정보실을 찾았다. 그런데 김씨는 뜻밖의 조언을 들었다. 고려대 취업센터 관계자는 "요즘은 예전처럼 학교 간판으로 취업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차라리 고시 공부를 계속 하는 게 낫다"고 조언해 김씨를 놀라게 했다.

인턴,아르바이트,공모전,봉사활동,자격증 등 이른바 '취업 5종세트'가 취업 시장의 필수 요건으로 자리잡으면서 학벌만 믿고 고시 준비를 하던 학생들의 취업문이 좁아지고 있다. 기업이 요구하는 토익·학점 등 '스펙'을 맞추려면 학점,인턴십 등에 2년 이상 공을 들여야 하지만 고시에 전념하던 학생들은 이같은 준비가 거의 돼 있지 않아 취업이 사실상 힘들다는 것. 취업포털 커리어의 김기태 대표는 "공무원시험이나 고시의 경쟁률이 평균 100대1로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다보니 시험에 치여 다시 구직전선에 뛰어드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기업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며 "대기업은 입사를 위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중소기업들은 고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회사를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고시 포기생들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시 포기생들에 대한 일선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지난해 40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한 한 이동통신사의 인사담당자는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지난해 선발한 신입사원 중 고시를 준비하다 포기한 학생은 한명도 없었다"며 "수상경력이나 인터넷 사업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봤는데 고시생들은 회사가 원하는 경력도 없고 별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 대기업 채용담당자도 "고시생을 드러내놓고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선호하지도 않는다"며 "사실 비선호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고시생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쉽게 그만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대학의 취업정보센터들은 고시를 포기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고시 준비 경력을 숨기는 것이 좋다. 하지만 숨기기 힘들다면 고시 준비를 통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길렀다는 사실을 강조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채흥덕 성균관대 취업정보센터 과장은 "행정고시 재경직을 준비하다 그만둔 한 학생은 '재무 분야 지식을 쌓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고시공부를 했지만 원래 공무원에는 뜻이 없었다'고 답변해 합격한 사례가 있다"며 "대놓고 솔직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오영민 연세대학교 취업지원실 과장은 "고시 포기생들도 가장 먼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분야를 정한 뒤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의 휴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정도의 노력은 기울여야 취직할 수 있다"며 "삼성경제연구소(SEARI)의 지식동아리 같은 데 가입해서 직접 전문가들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성선화/송형석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