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원 핸드백을 불태운다고?

에르메스ㆍ루이비통ㆍ샤넬, 고가 브랜드 유지위해 재고품 없애

지난 15일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부경산업 소각장.개당 수백만원을 줘야 하는 핸드백과 원피스 등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던져지고 있었다.에르메스 코리아가 1997년 한국에 지사를 연 이래 다섯 번째로 벌인 '재고 파괴(destruction)' 절차가 진행되고 있던 것.소각장으로 들어가기 직전,금속으로 된 제품은 펜치와 망치 아래 무참히 부서졌고 섬유 제품엔 가차 없이 가위질이 가해졌다.

6월1일 문을 여는 신세계첼시의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이 유명 브랜드들의 '이월 재고 명품'을 상시 할인 판매하기로 해 주목받고 있지만 에르메스와 샤넬,루이비통 등 이른바 '빅3' 브랜드는 출시된지 2~3년이 지난 의류와 전시용 등 상품성이 떨어진 피혁제품은 모두 소각해버리는 특이한 재고 처리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월상품을 VIP 세일,자사 직원을 대상으로 한 패밀리 세일,백화점 및 면세점에서의 정기 세일,교외에 있는 아울렛을 통한 상시 할인 판매 등으로 재고를 처리하는 다른 수입 브랜드들과 대조적이다.명품족에게 '노(No) 세일'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심어줘 고가 전략을 지속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풀이다.

일부 특급 명품들이 비싼 데에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공인회계사 입회,비디오 촬영까지에르메스 관계자는 "각국별로 정해진 쿼터에 따라 제품을 공급받기 때문에 재고가 많지는 않다"며 "2,3년에 한두 번꼴로 재고가 쌓였다 싶으면 100% 소각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지사에서도 마찬가지며 홍보용 샘플들도 이때 한꺼번에 태워버린다"고 덧붙였다.

시가로 수억원에 달하는 상품이 소각되는 만큼 절차 역시 간단치 않다.우선 소각 며칠 전에 관할 세무서인 강남 세무서에 입회해 달라는 공문을 요청한다.

회사 관계자는 "세무서 공무원이 나오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세금 포탈 혐의를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라고 말했다.

소각의 전 과정은 공인회계사 입회 하에 비디오 화면에 담겨진다.

자산을 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연말에 회계 감사 때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명품 빅3 중에서도 에르메스와 샤넬이 소각처리 횟수가 좀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루이비통은 워낙 잘 팔리는 스피디백 등 대중화된 명품 위주로 판매 전략을 바꿔 악성 재고가 없는 데다,자동 발주 시스템 등 본사와 연계된 물류 체계를 통해 재고를 남기지 않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브랜드도 의류 등 일부 '비주력' 품목은 재고가 많이 쌓일 경우 할인 판매로 처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간판 인기품목이자 재고관리가 쉽지 않은 핸드백 등 가죽제품은 '소각 원칙'을 한번도 건너뛴 적이 없다는 것.


◆에르메스ㆍ샤넬ㆍ루이비통,왜 비싼가 했더니

에르메스가 '재고 파괴'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이월상품이 없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짝퉁' 유통이나 병행수입(판매권을 가지고 있는 업체 외에 다른 유통 경로로 같은 상품을 수입하는 것)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철저한 '노(No) 세일 특급명품'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판매 가격에 전가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에르메스 등의 소각처리는 세금상의 편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할인 판매를 통한 수익은 과세 대상이지만 재고를 완전 소각하면 순손실로 잡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

결국 소비자들은 '빅3' 특급 명품에 대해선 면세점을 통하지 않는 이상 항상 첫 출시 가격에 구매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에르메스의 인기 핸드백인 켈리(kelly)백의 경우 소가죽으로 된 것이 650만∼780만원 수준인데 출시 이래 다른 가격에 거래된 적이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그런데도 에르메스는 지난해 국내 5개 매장에서 4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리는 짭짤한 성과를 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