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高엔低‥수출기업 '비명'] (中) 가격 메리트 없는 한국제품

한국의 두산중공업처럼 파워플랜트와 운반기계 등을 생산하는 일본 IHI사는 1년 새 한국 거래업체 3곳 가운데 2곳을 바꿨다.

이 회사의 국제구매담당인 나가바야시 도시나오는 "원화 절상으로 한국산 부품가격이 2년 새 30% 정도 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화강세를 감당하지 못한 거래선들이 납품가격 인상을 요구하자, 한국 내 다른 업체로 납품업체를 바꿔버린 것.

나가바야시씨는 "원·엔 환율이 추가로 더 떨어지면 수입선을 중국 등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국에선 연간 5억엔어치의 전기부품, 모터, 컨트롤러 등을 수입하고 있는데 원고·엔저 상황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중국과 인도 등으로 거래선 다변화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중국과 인도산은 한국산보다 납품가격이 30~50% 싸 품질과 납기 등이 검증되면 납품을 받겠다는 게 회사 측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2위 건설업체인 시미즈건설은 2005년 50억엔이던 한국산 건자재 수입물량을 지난해 20억엔 수준으로 줄였다.

도쿄전력도 한국으로부터의 수입물량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이 회사 고주에 후시미 국제조달부장은 "아직은 한국제품 구입 정책이 바뀌지 않고 있다"며 "그렇지만 원고가 이어지면 거래선을 다변화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도쿄전력은 연간 10억엔어치의 배전반,전선,케이블 금속,펌프류 등을 한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고주에 부장은 "한국산은 일본산보다 30% 정도 싸지만 가격 메리트가 줄고 있다"며 "한국기업의 원가절감 노력을 지켜본 뒤 구매정책을 다시 짤 것"이라고 강조했다.원고·엔저로 가격경쟁력을 잃은 한국제품들이 일본에서 설땅을 잃어 가고 있다.

일본 바이어들이 같은 가격이면 품질과 납기가 보장되는 자국제품으로 돌리거나 가격 메리트가 있는 중국과 동남아산을 찾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분기 대일 수출금액은 62억6500만달러로 작년 1분기에 비해 1.3% 감소했다.

한국기업들이 일본 수출전선에서 '원고·엔저'라는 걸림돌을 만난 반면, 일본 기업들은 한국 진출 공략을 가속화하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

종합스포츠 메이커인 미즈노는 한국 판매가 늘어남에 따라 한국 내 단독매장 설치를 추진 중이다.

마츠다 다카시 국제광고담당은 "대한(對韓) 수출이 2004년 1200만달러, 2005년 1600만달러, 2006년 2000만달러 등으로 해마다 25% 정도 증가하고 있다"며 "환율 변수가 우호적으로 조성된 점을 활용해 한국 내 판매를 늘리는 방안을 다각도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미즈노의 대한 수출품목 중 1위는 전체의 85%를 차지하는 골프채와 골프관련 용품.단조제품으로 만든 아이언은 한국시장 점유율 1위(17.4%)다.

미즈노는 골프에서 얻은 소비자인지도를 활용해 러닝슈즈 등 아웃도어 용품 쪽으로 수출품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와코도(WAKODO) 브랜드로 일본 어린이 식품시장에서 35%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식품업체 와코도(和光堂)도 한국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회사 구로다 유슈히코 상무(영업본부장)는 "6년 전 한국시장에 처음 진출했는데 올해 원고·엔저 등 호재가 많아 매출목표를 50% 이상 높여 잡았다"고 말했다.

구로다 상무는 "현재 한국 수도권 소재 백화점 위주로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지역과 판매업소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케이블TV와 잡지 광고도 늘리겠다"고 말했다.

와코도는 한국시장 진출을 공고히 하기 위해 최근 현지 공장 건설 계획을 확정했다.

현재 한국 최대 로펌인 김&장과 계약을 맺고 법률 검토작업에 들어갔으며 이르면 2009년께 한국공장을 준공,가동한다는 계획이다.원고·엔저 현상이 한·일 양국 기업을 웃고 울리고 있다.

도쿄=남궁 덕 기자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