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작가制 미술계 藥인가… 毒인가…

화랑이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면서 전시회도 열어주는 전속작가제도.이는 미술시장의 약일까,독일까.

최근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김훈씨(84)가 연미술(대표 전후연)과 전속계약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고,지난해에 같은 문제로 우울증에 걸린 오승윤씨가 자살하는 등 화랑업계의 전속작가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이에 따라 전속작가 제도가 일부 화랑들의 독과점 현상을 불러오면서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과 안정적인 지원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육성할 수 있는 제도이므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꺼번에 나오고 있다.


◆어떻게 계약되나=국내 화랑의 상당수가 전속계약을 맺고 있긴 하지만 작가의 작품 및 전시를 영구적으로 관리ㆍ지원하는 매니지먼트는 갤러리 현대(30~40명),가나아트갤러리(10여명),아라리오(20여명),연미술(2명) 등 몇 군데 정도다.

여기에 소속된 작가는 100여명.화랑들은 전속 작가에게 월 200만~80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전시회를 열어준다.

대신 작가의 작품은 전적으로 이들 화랑의 컬렉션으로 수집된다.

현대와 가나는 전속 작가가 다른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 때 작품 판매 대금의 10%를 수수료로 받고 있다.특히 화랑은 작가에게 계약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어 일부에선 '노예문서'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그만큼 작가에게 '페널티'가 많다는 이야기다.


◆갈등 사례=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다 2002년에 귀국한 김훈씨는 최근 연미술 측과 전속계약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김씨는 2003년 8월부터 5년간 생활비 월 500만원 지원과 함께 다른 화랑에 3년간 작품판매 금지 및 5년간 전시금지를 조건으로 전속계약을 맺고 작품 98점(2억4000만원 상당)을 호당 4만8000원에 건네줬다.

하지만 연미술 측이 생활비 지원을 중단하고 투병중인 작가로부터 작품 100여점을 추가로 가져가는 등 계약위반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김씨 측은 주장했다.

반면 연미술 측은 김씨의 생활비를 중단한 것은 사전 계약에 따른 것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속계약과 저작권 문제를 둘러싸고 법정다툼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고 오지호 화백(1905~1982년)의 차남인 오승윤씨가 지난해 1월 자살한 것은 연미술 측과 저작권 및 계약문제로 갈등을 빚은 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유족 측은 주장했다.


◆찬반 논란=미술계에서는 전속작가 제도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먼저 대형 화랑들이 유망한 작가를 '빨아들여' 시장가격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중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작가가 200명도 안되는 상황에서 대형 상업화랑이 급격하게 작가를 흡수할 경우 '독식'이 심화되면서 비 전속작가들은 아예 퇴출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 학예실장은 "작품성을 통해 작가를 잡지 않고 전속작가 카드를 남용할 경우 시장가격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작가의 작업실이 '미술공장'으로 전락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반면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전속작가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일부 화랑의 작가들은 미국 홍콩 등 해외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며 "전속작가 제도가 시장 활성화,작품 공급 확대,작가 경쟁력 기여,작품 가격 상승 등의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