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 보내주세요"... 사도세자 심경고백 편지 내용은?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가 1749~1756년 사이에 자신의 심경을 담아 장인 홍봉한(洪鳳漢)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됐다고 동아일보가 15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권두환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는 최근 일본 도쿄(東京)대에서 조선 영조ㆍ장조(사도세자)ㆍ정조가 친척들에게 보낸 편지 58첩 가운데 11첩을 촬영한 흑백사진자료를 발견, 이 가운데 사도세자의 편지 내용을 번역했다.현재 남아있는 사도세자 관련 자료는 공식문서가 대부분일 뿐 자신의 내면을 토로한 글은 거의 없어 학계에서는 아버지 영조와의 갈등을 알려주는 가치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번역된 편지에는 사도세자가 1753~1754년 어느 날 장인 홍봉한(洪鳳漢)에게 자신의 병세를 아버지 영조에게 말하지 못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나는 원래 남모르는 울화의 증세가 있는 데다, 지금 또 더위를 먹은 가운데 임금을 모시고 나오니, (긴장돼) 열은 높고 울증은 극도로 달해 답답하기가 미칠 듯합니다. 이런 증세는 의관과 함께 말할 수 없습니다. 경이 우울증을 씻어 내는 약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니 약을 지어 남몰래 보내 주면 어떻겠습니까.” 1754년 10월 또는 11월 중에는 “이번 알약을 복용한 지 이미 수일이 지났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습니다. 나는 겨우 자고 먹을 뿐, 허황되고 미친 듯합니다”(내용은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네 번 정도 반복)

사도세자가 만 14세인 1749년 어느 날 아버지 영조에 대한 불만을 담아 장인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내 나이 올해로 이미 15세의 봄을 넘긴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아직 한번도 숙종대왕의 능에 나아가 참배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겨우 자고 먹을 뿐 미친 듯합니다.” 사도세자가 21세인 1756년 2월 29일에 장인에게 보낸 편지도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6년 전의 고백이다.

“나는 한 가지 병이 깊어서 나을 기약이 없으니, 다만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민망해할 따름입니다.”

궁내에서 의관에게 자신의 병세를 전하면 갈등을 빚고 있는 아버지 영조에게 전해질까 두려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사도세자는 병을 앓을 때는 불안한 심리를 보이다가도 이성을 되찾을 때는 나라살림에 끊임없는관심을 보였다. 국가의 제도와 규칙이 설명된 서적과 지도를 구해 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여러통 보내기도 했다.

“(보내 주신) 지도를 자세히 펴 보니 팔도의 산하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고인이 말한 바 ‘서너 걸음 문을 나서지도 않았는데 강남 수천리가 다하였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기쁘고 고마운 마음을 표할 길이 없어 삼가 표피 1영을 보내니 웃으며 거둬 주시기 바랍니다.”(1755년 11월 회일)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가 동생에게 "영ㆍ장ㆍ정조가 보낸 편지 등 글귀가 집안 여기저기에 흩어져 방치돼 있으니 정리해 책으로 만들자"고 제안해 편지 총 2천94통을 정리해 책으로 엮었다는 내용도 있다.

이들 자료는 1910∼1916년 사이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입수해 일본으로 가져갔으며, 현재 원본은 야마구치(山口) 현립 도서관에 있다. 도쿄대 다가와 고조(田川孝三) 교수가 이를 사진으로 촬영해 1965년부터 이 대학에 보관해오다 퇴직 후 유품으로 남겼다.

권 교수는 15일 서울대 국문과 학술발표회에서 번역 내용과 편지 고증 과정을 발표했다. 사도세자가 아내의 출산을 걱정하는 내용 등은 추가로 번역해 논문으로 낼 계획이다.

비운의 주인공인 사도세자는 1735년 에 태어나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 27세의 나이로 뒤주에 갇혀 죽었다.아들 정조가 장헌(莊獻)이란 이름을 올렸고 1899년 고종 때 다시 장조(莊祖)로 추존됐다. 아내인 혜경궁 홍씨는 조선왕실 여인의 회고록으로 유명한 ‘한중록’에서 남편의 비화를 소개했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