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패자 부활

SBS TV의 '도전 1000곡'은 드물게 장수하는 프로그램이다.

일요일 아침에 방송되는 이 노래방 게임은 다른 오락 프로그램과 상당히 다르다.우선 출연자가 다양하다.

주로 연예인이긴 하지만 가수 탤런트 개그맨 등 분야 제한이 없다.

연령도 천차만별이다.1937년생 원로가수 현미씨와 83년생 이루가 같은 무대에서 겨루는 식이다.

또 가사만 심사한다.

타고난 재능이 아닌 노력을 평가하는 것이다.무엇보다 두 번의 패자부활전이 있다.

1차전에서 2팀 이상 탈락하면 패자부활의 기회를 주고,2차전에서 결승 진출자가 결정되면 나머지 사람들끼리 다시 경쟁하도록 해 결승 도전자를 가려낸다.

애써서 수많은 노래를 외웠는데 하필 초반에 모르는 곡이 나와서 실패한 사람을 위해 기회를 더 주는 것이다.패자부활전은 이처럼 실수나 잘못을 만회시킨다.

운동경기 역시 마찬가지다.

패자부활전을 치르면 막강한 실력을 지닌 팀들이 1차전에서 맞붙음으로써 한 팀은 다른 팀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탈락하는 억울한 일을 막을 수 있다.

사람이건 조직이건 기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살다 보면 부득이한 사정으로 뒤처지는 때도 있고 순간의 판단 착오로 패자가 되는 수도 생긴다.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자면 이런 이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줘야 한다.

그래야 출발이 늦거나 넘어졌던 사람도 다시 일어나 세상에 맞설 수 있다.

교육부의 내신성적 반영 강화지침은 재수생을 비롯한 상당수 수험생의 패자부활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나 같다.

청소년기엔 작은 일로도 방황하기 일쑤다.

학창시절 건강이나 가정 혹은 이성문제로 공부를 등한시하다 뒤늦게 마음을 잡는 경우 내신에 발목이 잡히면 그만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재학생은 자퇴라도 한다지만 재수생은 그 길도 없다.

역전의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세상은 끔찍하다.

내신성적 위주 입학 사정은 모든 교사의 수준 및 학생과 학부모의 조건이 똑같다는,불가능한 전제 아래 가능한 것이다.제발 괜한 억지를 부리느라 갈 길이 구만리인 청소년들의 패자부활 기회를 차단하지 말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