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자진신고의 후유증

최근 손해보험회사 사장과 손해보험협회장에게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간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공정위가 10개 손보사에 5년간 보험료를 담합했다는 이유로 508억원의 과징금을 때린 직후였다.공정위 고위 간부는 전화를 통해 "동부화재를 '왕따'시키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동부화재는 이번 담합과 관련해 삼성화재(119억원) 다음으로 많은 과징금(109억원)을 부과받았다.

하지만 공정위 조사가 본격화되자 동부화재는 가장 먼저 "손보사들이 여러 차례 보험료 담합을 위한 실무회의를 했다"고 털어놨다.1순위 자진신고자는 과징금 100%를 면제해주는 당근책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동부화재의 '배신'에 격분한 다른 손보사들은 "동부화재가 참석하는 회의는 나가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최근 열린 손보사 사장단의 골프회동이 파행으로 끝났다.동부화재 사장이 참석키로 하자 삼성화재 현대해상 등 업계 1,2위 사장들과 손보협회장이 여러가지 사정을 대고 불참했다.

손보사들은 다른 어느 업종보다 협력 관계를 중시해왔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50~6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데다 보험 업종의 특성에서 유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손보사의 반응은 냉랭하다.

"왕따를 시키든 말든 공정위가 그것까지 간섭할 수 있다는 법이 있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손보사의 한 임원은 사석에서 "(동부화재를)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가 한자리에 모여 공정위 조사에 대한 법률적 대응책을 논의한 회의 내용까지 조목조목 보고한 것은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손보사 관계자는 "보험사들은 통상 동일한 위험률을 기초로 가격을 산출하는 게 관행이며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도 있었다"며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끝까지 불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개 회사가 공정위의 자진신고라는 당근에 홀려 담합으로 나머지 회사를 몰아갔다는 사실이 답답할 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올해 61년째를 맞는 손보협회의 돈독한 우의는 이래저래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어선 것 같다.

장진모 경제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