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12) 간디의 물레가 풀지 못한 인도의 굴레

◆애비는 종이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후략)

미당 서정주의 시 '자화상'의 일부다. 시인의 고백처럼 그는 노비의 자식이다. 아마 그의 성(姓) '서'씨는 아버지 주인집의 성인지 모른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 성씨(姓氏)가 있어서 자신은 한때 고귀했던 가문의 자손일거라 믿고 있지만 상당수는 3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성(姓)조차 없던 천출(賤出)이 분명하다.

◆촉수엄금(觸手嚴禁) 종족
나렌드라 자다브 박사는 인도 중앙은행의 수석 경제보좌관 출신에 현재 명문 푸네 대학의 총장이다. 외신은 그를 '대통령감'으로 꼽는다. 그는 손만 닿아도 오염시킨다는 천출이다.

인도 카스트의 가장 낮은 계층은 수드라다. 그런데 수드라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계급이다. 여기에도 들지 못하는 천민들이 있다. 이들은 짐승보다도 못하다. 물이나 음식에 이들의 그림자만 닿아도 오염된다고 한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때는 침을 흘리지 않도록 목에 침 받침을 걸어야 했고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빗자루를 엉덩이에 걸고 다녀야 했다. 이들을 일컬어 촉수엄금(觸手嚴禁) 계층이라고 한다. 카스트 밖으로 내몰린 천민들인 아웃카스트(out-caste)는 인도 인구 16% 즉,1억6000만명이나 된다. (나렌드라 자다브,'신도 버린 사람들')◆영겁의 윤회를 뛰어넘는 힘

이들이 수천년 동안 굴욕적인 삶을 감내한 것은 윤회를 믿기 때문이다. 즉,전생의 죄에 대한 벌이지만 성실하게 살면 다음 생에서는 보다 나은 계급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자다브 박사의 아버지가 마을 경찰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는 이유로 매질을 당하고 어머니와 함께 야반도주를 한 지 수십 년 뒤 그의 아들이 미국의 박사가 되고 국제기구의 자문관까지 되었으니,이 부자(父子)는 수십 번의 윤회를 통해서만 가능한 가파른 신분의 계단을 단번에 뛰어 오른 셈이다. 그의 조상들을 3500년 동안 짓누르던 굴레를 한 세대 만에 넘어설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부모는 자녀교육을 통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 자다브 박사는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인도 천민들에게 교육은 일종의 종교라고 강조한다.

◆미친 듯이 공부하는 인도

인도의 엘리트 청년들은 미친 듯이 공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난히 다국적 기업의 우수 엔지니어와 CEO를 많이 배출한 인도공과대학(IIT)은 매년 18만명이나 응시하지만 2. 6%만이 입학할 수 있는 천국의 계단이다. IIT 입시에 떨어진 학생들이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기도 한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설립자인 비노드 코스라는 "박사학위를 위해 미국의 카네기멜론대학에 들어온 뒤 IIT에서 받은 교육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쉬워서 내가 너무 놀면서 학위를 하는 건 아닌지 반성했다"고 증언했다.

인도경제인연합회의 구르팔싱 부회장은 인도가 앞으로 30년 내에 중국 미국에 이어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어느 누구도 이 말을 허풍이라고 무시하지 못한다. 인도의 자신감은 미친 듯이 공부하는 이런 인력이 어느 나라보다 풍부하다는 사실에 있다. 한 회사가 갑자기 뛰어난 100명의 엔지니어가 필요하게 되었을 때 이를 공급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 인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통의 굴레를 넘어서는 두 개의 열쇠

한국인과 인도인들은 수천 년 동안 신분제의 굴레에서 살아왔다. 우리가 인도보다는 좀 나을지 몰라도 이 굴레로부터 공식적으로 벗어난 것이 딱 100년이 되었을 뿐이다. 실제로는 신분제 없이 고작 한 세대가 흘렀을 뿐이다. 1960년대만 해도 농촌에서는 신분의 기억이 또렷했고 누가 양반의 후손인지 상민의 후손인지를 훤히 알았다. 그러나 도시는 달랐다. 익명성과 계약이 지배하는 도시의 삶에서 누가 무슨 출신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전통사회에서 백정이 하는 일이지만 도시에서는 도축업자의 일이다. 비록 도시빈민이지만 도시의 자유로운 공기 때문에 자다브 박사의 아버지도 도시로 도망한다. 손만 닿아도 오염된다고 하지만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신분제의 마지막 세대에게 자식교육은 단순한 투자나 자식 사랑을 넘어선다. 상처와 응어리를 단번에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내 새끼가 고귀한 자식들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은 것이다. 수천 년간 지속된 열등(劣等)은 유전자 탓이 아니라 전통사회의 폭력 때문일 뿐이라는 말없는 웅변이다.

◆인도인에 대한 예의

산업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인도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성자의 나라로 기억된다. 이런 동경은 실제의 인도가 아니다. 서양의 지식인들이 찾고 있는 '고귀한 야만인'을 자기들 마음대로 인도에 투영한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인도 엘리트들을 만난다면 요가나 명상,인더스강의 목욕 따위는 묻지 않는 게 예의다. 인도를 끌어올리려는 이들에게 그 말은 '인도 만큼은 계속 가난하게 살아라'라는 비아냥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국어 교과서는 여전히 간디의 물레를 칭찬하고 있다. 간디는 20세기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수천 년의 굴레와 가난을 깨고 나오려는 인도인들은 간디의 물레만큼은 버리려고 한다. 옹색해서가 아니다. 사실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학생글:

김희정(명지외고 3학년)

물레의 가격

2004년 10월께 인도 동북부 북경지대에서는 무장 분리주의자들의 습격으로 60여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무장 분리자들의 근거지는 언어와 복장 및 풍습 등이 많이 달라 타지역과의 교류가 적어 경제적으로 고립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폭력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선 군사적으로 무장 분리자들을 제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그 지역의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간디는 경제성장과 산업화가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자기 먹을 것을 마련할 정도의 노동이 참다운 삶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위의 폭력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간디의 이런 사상은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했으며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여태껏 가난한 국가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데 일조했다. (중략)

인도의 공업성장 실패는 물레주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레주의는 자급자족적인 경제체제를 옹호한다. 실제로 간디가 물레운동을 펼친 것은 값싼 영국의 면직물에 대항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산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각 사람마다 능력과 자본이나 토지 등의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잘 생산할 수 있는 것이 모두 다르다. 이것은 집단에도 적용된다. 각 나라와 기업들은 각자 적합한 산업을 찾아 특화하고 나머지 필요한 것은 교환해 충당한다. 간디가 물레운동을 벌였을 당시 물레의 기회비용을 생각해 보자. 간디가 인도에서 1년에 물레로 생산할 수 있는 면직물은 10kg이고,차 농사를 지었을 때는 5kg의 차를 얻는다고 가정하자. 반면 영국은 면직물 30kg,차는 6kg을 생산한다고 가정한다. 또한 인도에서 면직물 10kg은 차 5kg과 교환이 가능하고 영국에서 면직물 30kg은 차 6kg과 바꿀 수 있다. 간디는 면직물이 필요해 물레로 10kg의 면직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노동력으로 차 5kg을 생산한다면 더 많은 면직물을 얻을 수 있다. 차 5kg을 영국시장에서 면직물로 바꾸는 것이다. 영국시장에서 차 1kg은 면직물 5kg의 가치를 가지므로 간디는 25kg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간디는 같은 생산력으로도 15kg의 면직물을 더 얻게 된다. 즉 간디가 면직물 10kg을 생산하면 기회비용이 면직물 25kg이나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식민지 시절 영국의 면직물 생산력은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 간디는 물레로 면직물을 만들자고 외치기보다는 영국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상품을 찾아 특화했어야 한다. 그랬더라면 훨씬 적은 노동력으로도 필요한 양 만큼의 면직물을 가지고 남는 노동력으로 다른 산업에 투자해 좀 더 일찍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