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후에도 내가 살아있을 수 있다면…

'희미하게,기력이 희미하게 생겨나려는 때에,뭔가 단단한 게 배 아래 와 닿았다. 곧이어 눈앞을 가로막는 게 보여 무작정 팔로 껴안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풀려 버린 몸이었고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있었다. 그런데 내 가슴부터 배까지 단단한 껍질 같은 게 바싹 붙어서 수면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둥글고,오각형과 육각형의 무늬. 이게 뭘까. 어느 결엔가 내가 손으로 붙잡고 있는 게 생물처럼 살아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됐다. 다름 아니라 거북이 머리였다.'

경남 거제에 사는 임강룡씨가 1990년 2월 영국에서 방글라데시로 가는 상선 갑판에서 엄청난 너울파도에 휩쓸려 인도양으로 추락한 뒤 일곱 시간의 사투 끝에 거북이 덕분에 살아난 얘기다.'일분 후의 삶'(권기태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은 이처럼 삶과 죽음의 접경에서 극한의 고통을 딛고 되살아난 12명의 생존 기록을 담은 논픽션이다.

기자 출신의 작가가 치밀한 취재와 고증,간결하고 객관적인 묘사,유려하면서도 사유적인 문장의 배합으로 '문학 논픽션'의 새 경지를 일궈낸 작품.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생의 고요한 격려'를 느끼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그리고 죽음보다 더 깊은 생의 심연에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발견했다.

7000m급 산 가운데 북극에 가장 가까운 포베다 산 설벽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발가락 열 개를 잃은 산악인 박태원씨.그는 그 몸으로 1996년 매킨리 봉을 정복했고 2000년에는 3000m 직벽의 아이거 북벽 위에 올라섰다.

친구를 구하려고 얼음판 위를 달려갔다가 익사한 후 기억상실증과 함께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경섭씨,한겨울 밤중 맨홀에 빠져 9일을 지하수로에서 헤매다 극적으로 구조된 조성철씨….이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품었던 간절한 소망은 '일 분 후에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을 수만 있다면…'이었다.

이들은 또 '캄캄하게 흘러가는 그 모진 시간 속에서도 생은 매순간 우리를 생의 정원으로 초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체득했다.

'그 고요한 생의 격려를 느꼈기에 일 분 후의 삶을 염원할 수 있었다는 것'도.이들이 극한에서 보인 용기와 의지를 되뇌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생의 감각은 빛나고,정원은 푸르다.' 276쪽,98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