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인플레의 늪에 빠진 한국] (3) 새로운 길을 뚫는 그들...기술대학.직업학교…또다른 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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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갈 때 대학 이름만 보고 가는 학생이 대부분이잖아요.
저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를 수없이 따져봤어요." 주혜민씨(25·여)가 고3 때 시화·반월공단에 있는 생소한 이름의 한국산업기술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일반 대학보다 취직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성적이 중상으로 다른 대학에 갈 수 있었지만 산기대(産技大)가 시설도 좋고 현장 실습도 많이 한다고 해서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주씨는 재학 중 산·학 협력 프로그램에 따라 전공(생명화학공학과) 분야의 중소기업 2곳에 4개월 정도 현장실습을 나갔다.
기업 현장에서 8학점 이상을 따야 졸업할 수 있다는 학교 규정에 따른 것이다.하루 8시간 4주간 일해야 2학점을 받는다.
현장 경험 덕분에 그녀는 졸업 전인 4학년 여름,안산에 있는 디지털바이오텍이란 중소기업에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연봉은 대기업보다 적죠.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초봉은 신경쓰지 않았어요." 중소기업에 대한 편견도 현장실습을 하면서 많이 사라졌다.그녀는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가족적이어서 근무환경이 괜찮은 면도 있다"고 말했다.
산기대는 학생들에게 탄탄한 현장교육을 시켜 최근 6년 연속 취업률 100%를 자랑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취업난을 뚫기 위해서는 '간판보다 실리'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고등학생의 82%(2006년 기준)가 대학에 들어가는 학력 과잉 시대에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 실업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묻지마 진학'이 아니라 진학 목적과 졸업 후 진로를 분명히 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대 출신으로 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해 삼성에버랜드(푸드컬처 사업부)에 입사한 이성욱씨(26)는 "학력보다 10개의 조리사 자격증이 취업 경쟁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리사가 되고 싶어 4년제 지방대를 중퇴하고 3년 전 전문대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갔다.
이후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각종 조리사 자격증을 땄고 이를 무기로 대기업 취업 관문을 넘었다.
올해 서울의 한 직업학교를 졸업한 뒤 대형 할인점에 냉난방 설비 전문가로 취직한 최모씨(33)는 "처음부터 직업학교에 가서 기술을 배웠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지방 전문대를 나온 그는 전공(전자계산과)과 상관없이 시내버스 운전기사,기업체 임원 승용차 운전기사 등을 전전하다 지난해 직업학교에 들어갔고 여기서 냉난방 관련 자격증 4개를 땄다.
그는 "처음 직업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아내가 많이 말렸지만 지금은 좋아한다"며 "자격증이 있으니까 평생 일할 수 있고 앞으로 경력이 쌓이면 월급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4개 직업학교(서울종합·한남·상계·엘림직업학교)의 입학생(1년에 총 3500~3600명 정도) 가운데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자는 지난해 32%에 달했다.
2003년 27%에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종합직업학교의 서인식 교무과장은 "대학 나오고 나이 서른이 다 돼서 오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면서도 "학력보다는 실력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고졸 출신이지만 실력 하나로 대기업 취업문을 뚫은 사례도 있다.
올해 서울의 한 공고를 졸업한 뒤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고모씨(20)는 "지난해 전국기능대회에서 입상한 것이 입사에 도움이 됐다"며 "기능대회 수상자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고액 연봉으로 입사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중공업 정유 등 일부 업종의 경우 고졸 출신 중에서도 연봉 3000만원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생명보험회사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최모씨(34·여)는 원래 전문대를 중퇴했지만 탁월한 고객 상담 실력으로 연 60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최씨는 이후 4년제 대학 편입을 거쳐 지금은 국내 모 대학에서 금융 관련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학벌'을 높이려는 생각 외에도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다.
그녀는 "앞으로 금융시장은 더 성장할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가 되고 싶어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무조건 대학에 가는 대신 일단 취직한 다음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잉 학력 해소를 위해서는 기업들의 임금체계가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박성준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학 나왔다고 임금을 더 주는 대신 직무 성격과 성과에 따라 임금을 주는 풍토가 정착되면 무조건 대학부터 가고 보자는 생각이 지금보다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언/주용석 기자 indepth@hankyung.com
저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를 수없이 따져봤어요." 주혜민씨(25·여)가 고3 때 시화·반월공단에 있는 생소한 이름의 한국산업기술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일반 대학보다 취직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성적이 중상으로 다른 대학에 갈 수 있었지만 산기대(産技大)가 시설도 좋고 현장 실습도 많이 한다고 해서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주씨는 재학 중 산·학 협력 프로그램에 따라 전공(생명화학공학과) 분야의 중소기업 2곳에 4개월 정도 현장실습을 나갔다.
기업 현장에서 8학점 이상을 따야 졸업할 수 있다는 학교 규정에 따른 것이다.하루 8시간 4주간 일해야 2학점을 받는다.
현장 경험 덕분에 그녀는 졸업 전인 4학년 여름,안산에 있는 디지털바이오텍이란 중소기업에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연봉은 대기업보다 적죠.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초봉은 신경쓰지 않았어요." 중소기업에 대한 편견도 현장실습을 하면서 많이 사라졌다.그녀는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가족적이어서 근무환경이 괜찮은 면도 있다"고 말했다.
산기대는 학생들에게 탄탄한 현장교육을 시켜 최근 6년 연속 취업률 100%를 자랑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취업난을 뚫기 위해서는 '간판보다 실리'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고등학생의 82%(2006년 기준)가 대학에 들어가는 학력 과잉 시대에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 실업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묻지마 진학'이 아니라 진학 목적과 졸업 후 진로를 분명히 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대 출신으로 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해 삼성에버랜드(푸드컬처 사업부)에 입사한 이성욱씨(26)는 "학력보다 10개의 조리사 자격증이 취업 경쟁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리사가 되고 싶어 4년제 지방대를 중퇴하고 3년 전 전문대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갔다.
이후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각종 조리사 자격증을 땄고 이를 무기로 대기업 취업 관문을 넘었다.
올해 서울의 한 직업학교를 졸업한 뒤 대형 할인점에 냉난방 설비 전문가로 취직한 최모씨(33)는 "처음부터 직업학교에 가서 기술을 배웠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지방 전문대를 나온 그는 전공(전자계산과)과 상관없이 시내버스 운전기사,기업체 임원 승용차 운전기사 등을 전전하다 지난해 직업학교에 들어갔고 여기서 냉난방 관련 자격증 4개를 땄다.
그는 "처음 직업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아내가 많이 말렸지만 지금은 좋아한다"며 "자격증이 있으니까 평생 일할 수 있고 앞으로 경력이 쌓이면 월급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4개 직업학교(서울종합·한남·상계·엘림직업학교)의 입학생(1년에 총 3500~3600명 정도) 가운데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자는 지난해 32%에 달했다.
2003년 27%에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종합직업학교의 서인식 교무과장은 "대학 나오고 나이 서른이 다 돼서 오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면서도 "학력보다는 실력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고졸 출신이지만 실력 하나로 대기업 취업문을 뚫은 사례도 있다.
올해 서울의 한 공고를 졸업한 뒤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고모씨(20)는 "지난해 전국기능대회에서 입상한 것이 입사에 도움이 됐다"며 "기능대회 수상자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고액 연봉으로 입사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중공업 정유 등 일부 업종의 경우 고졸 출신 중에서도 연봉 3000만원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생명보험회사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최모씨(34·여)는 원래 전문대를 중퇴했지만 탁월한 고객 상담 실력으로 연 60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최씨는 이후 4년제 대학 편입을 거쳐 지금은 국내 모 대학에서 금융 관련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학벌'을 높이려는 생각 외에도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다.
그녀는 "앞으로 금융시장은 더 성장할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가 되고 싶어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무조건 대학에 가는 대신 일단 취직한 다음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잉 학력 해소를 위해서는 기업들의 임금체계가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박성준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학 나왔다고 임금을 더 주는 대신 직무 성격과 성과에 따라 임금을 주는 풍토가 정착되면 무조건 대학부터 가고 보자는 생각이 지금보다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언/주용석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