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연금개혁의 성적표

경제,합의,대책.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에서 빠진 세 가지 요소다.

이번 연금개혁은 '경제'적인 합리성보다는 당리당략적인 정치에 의해 좌우됐고,사회적인 '합의'보다는 몇몇 정치인들에 의해 주도됐다.연금 개혁의 부산물인 기초노령연금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데도 재원 마련을 위한 아무런 '대책'없이 도입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3년 10월 국회에 제출된 지 3년8개월 만에 처리된 '장기 미결' 법안치고는 치명적인 결함을 해결하지 못한 채 처리된 셈이다.

이는 정치권이 연금법을 2년반 동안 방치해 놨다가 1년 만에,그것도 마지막 6개월 만에 여론에 밀려 허겁지겁 처리한 탓이다.가뜩이나 말 많은 연금개혁이 이 때문에 더욱 비난을 받고 있다.

'용돈연금 개악' '정치야합 연금개악' '반쪽짜리 개혁' '미완의 개혁' 등 비판의 용어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번 연금개혁은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평가할 점도 적지 않다.우선 개혁의 시점이다.

이번 개혁은 59년(1988~2047년)짜리 시한부 환자의 수명을 13년 연장해 놓은 것에 비유된다.

대부분의 연금 선진국들은 기금 고갈을 코앞에 두고서야 수술을 한다고 난리를 피웠다.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선 그 과정에서 정권이 몰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살'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자기개혁에 나섰다.

건강하고 지속적인 삶은 보장받지 못했지만 최소한 앞으로의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경험은 쌓게 됐다는 평가다.

두 번째는 노후 연금수령액을 많게는 30% 이상 줄이는 그야말로 '연금 혁명'을 단행했는데도 온 국민이 이에 공감하고 수용한 저력이다.

일부에선 앞으로 부담이 늘어날 젊은층이 조직화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는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본다.

외환위기 때 보지 않았던가.

어려움이 클수록 똘똘 뭉쳐 문제를 정면 돌파해 나가는 우리의 기질 말이다.이번 연금개혁에 쏟아지는 비난이 적지 않지만,그래도 어깨를 두드려줄 만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