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현정의 스타일 톡톡] 최정인 슈즈 디자이너 ‥ 다리가 가장 예뻐보이는 9cm 하이힐의 마법

"Hello,lovely…."

미국의 인기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가 '마놀로 블라닉' 매장의 슈즈를 보며 외친 감탄사다.전세비 낼 돈은 없어도 500달러짜리 마놀로 블라닉 슈즈 300켤레 살 돈은 있는 여자 캐리.잠시 스스로 한심하다고 여기지만 재산 증식으로 부자가 되기보다 스타일로 배부른 마음의 부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그녀.2000년대부터 불어 온 슈즈홀릭(shoes-holic) 붐은 청담동을 기점으로 몇몇 슈즈 디자이너들에 의해 시작됐다.

장인 정신으로 똘똘 뭉친 대표적인 슈즈 디자이너 최정인.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처럼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할 만큼 매혹적인 그녀의 슈즈를 만나기 위해 압구정 부티크를 찾았다.


# 여자의 최고 액세서리는 애티튜드"저는 비즈니스에 관심 없어요."

패션 비즈니스를 잡기 위해 대기업부터 백화점,온라인 쇼핑몰까지 디자이너 색출 작업이 한창인 요즘 나는 시대를 역행해 가는 슈즈 디자이너 최정인을 만났다.

투자 유치는 물론 유통을 책임져 줄 든든한 파트너를 갖는 것이 젊은 디자이너의 꿈이어야 할 마당에 매장을 늘리는 데 관심이 없다는 그녀의 말은 의아할 수밖에.대학 졸업 후 늦깎이 사회생활을 구두 브랜드 '세리'에서 시작한 그녀는 판박이같이 찍어내는 한국의 슈즈 시장에 한계를 느끼고 2003년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든 최정인 부티크를 열었다.그리곤 한 켤레에 50만원에서 100만원을 육박하는,명품보다 더 비싼 슈즈로 당시 슈즈홀릭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언제나 9cm 아찔한 하이힐,그리고 송치 에나멜 실크 등 파격적인 소재와 컬러로.아직까지도 한국의 패션&뷰티 브랜딩 작업은 안타까운 실정이다.

정기적으로 외국에 나가 시장 조사하고 잘나가는 브랜드의 디자인이나 컨셉트를 베껴서 적당히 한국 시장에 맞는 제품으로 둔갑시켜 신제품을 내놓는다.최정인은 시장 조사를 통한 리서치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작업을 하고 싶었고 자기만의 '사유'와 '진실'이 담긴 결과물을 만들고 있다.

어느 도시에서 느낀 이미지,꿈에서 본 형상,그녀에게 생기는 모든 일들이 슈즈에 그대로 반영된다.

퓨처리즘이니 미니멀리즘이니 하는 트렌드 보고서는 신경도 안 쓴다.

"저는 18세기에 태어났어야 할 사람이에요."

21세기에 태어났어야 할 16세기 여자 황진이와는 상반되게 그녀는 18세기 르네상스 시대적 라이프 스타일을 타고났다.

작업실엔 옛날 전화기,앤틱 손거울,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만년필,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오래된 카메라가 놓여 있다.

인터넷도,운전도,교통카드도 사용할 줄 모른다.

"잘빠진 스포츠 카를 모는 미니 스커트 입은 여자보다는 코르셋을 졸라 맨 드레스를 입고 말에서 내리는 여자가 더 매혹적이지 않아요? 그녀의 보일 듯 말 듯 우아한 발목과 하이힐,귀품스러운 애티튜드가 훨씬 아름다워요."

최정인은 여자의 가장 중요한 액세서리는 '애티튜드'라고 말한다.

아무리 비싼 명품을 걸쳐도,막 디스플레이된 트렌드 신상품으로 쫙 빼입어도 애티튜드가 엉망이면 전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애티튜드는 키나 외모와 상관 없이 그 사람에게서 묻어나는 태도,이미지,곧 스타일을 의미한다.


#섹스할 때 잘 어울리는 슈즈

최정인의 애티튜드는 극과 극이다.

지극히 매혹적이거나 지극히 매니시(manish)하거나.

평소 즐겨 입는 옷은 청바지에 BYC 남성 러닝 셔츠.압구정의 잘나가는 디자이너가 웬 BYC 러닝?

"막 빨아도 좋고 헐렁한 실루엣이 멋스러운 데다 살짝 늘어지는 가슴 라인이 섹시하거든요."

10개 러닝 셔츠로 여름을 난다는 그녀는 9cm 하이힐이 아니면 납작한 플랫 슈즈,빅 백이 아니면 손바닥 만한 클러치를 선택하는 극단적인 스타일링을 좋아한다.

막 침대에서 일어난 듯한 헝클어진 베드 헤어(bed-hair)와 스모키 아이가 잘 어울리는 최정인에겐 밍밍하고 개성 없는 중간치 아이템들은 피해야 할 아이템.가격대도 마찬가지다.

옷은 질 좋으면서 싼 아이템을 고르고 대신 비싼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는 것이 그녀의 스타일링.

"만약 제가 100만원으로 쇼핑한다면 옷을 사는 데 10만원,그리고 나머지로는 볼드한 에르메스 팔찌를 구입하겠어요."

오늘 입은 컨셉트는 블랙&메탈 골드.저지 소재의 신축성 있는 풍성한 원피스에 자신이 디자인한 스와로브스키가 둥글게 박힌 메탈릭한 오브제를 장식한 골드 슈즈로 에지 있는 연출을 했다.

"저는 몸매가 좋은 편이 아니에요. 다리도 못생겼고요. 하지만 저한테 잘 어울리고 제가 입고 싶은 옷을 입죠. 이런 체형은 이렇게,이런 상의엔 하의를 이렇게 매치해야 한다는 식의 절대적인 코디 원칙은 없어요."

신발이 많지 않다면 가장 베이식한 슈즈를 선택할 것을 권한다는 최정인.어떻게 하면 9cm 하이힐로 늘씬한 다리 라인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녀는 최정인 슈즈를 신으면 된다고 말한다.

다리가 날씬해지는 슈즈의 비밀은 100% 정해진 공식에 있는 게 아니라 키와 몸매에 상관 없이 소재와 디테일,굽의 비밀에 있다.

9cm는 다리가 가장 날씬해 보이는 굽의 높이.하지만 앞코가 뾰족한지,둥근지,가죽 소재인지 에나멜인지,오픈 토 혹은 스트랩인지에 따라 각선미를 좌우할 수 있으니 최대한 많은 시도를 해 보고 날씬해 보이는 디자인을 찾아야 한다.

언제나 강조하지만 잡지에서 설명하는 정해진 스타일 공식대로 입는다면 '애티튜드'를 갖춘 여자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자신의 스타일을 찾고자 하는 열정,시간,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참조는 하되 나 자신의 체형,다리 모양,취향을 고려해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거기서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최정인이 말하는 슈즈 머스트 해브 아이템은 밤에 신는 나이트 슈즈.최정인 슈즈는 실제로 낮보다 밤에 신어야 더 매력적이다.

"섹스할 때 잘 어울리는 슈즈예요." 여자를 가장 여자이게 하는,여자를 가장 고혹적이게 하는 그런 슈즈.

브레인파이 대표·스타일 컬럼니스트 http://www.cyworld.com/venus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