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정치점(占)

1997년 외환위기 때의 얘기다.

경복궁의 경회루를 준설하는 과정에서 청동으로 만든 용(龍)이 나왔다.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연못에서 잘 지내는 용을 꺼내는 통에 외환위기라는 국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일각의 여론에 밀려 결국 그 용을 복제해서 연못에 다시 집어 넣는 촌극을 빚었다.이처럼 미신을 믿는 문화의 뿌리는 깊다.

예로부터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농점(農占)이라든지,동물의 행동으로 개인의 길흉을 알아보는 동물점은 우리 생활속의 관습으로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큰 일은 물론이고 출타를 하거나 이사를 하는 자질구레한 일까지도 예외없이 무속인을 찾아 조언을 구하곤 했다.점집은 항상 붐볐는데,첨단과학 시대의 지금에 와서는 되레 '무속산업'이라 불릴 만큼 더욱 화황을 누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의 점집이 30여만개나 되고,한 해 여기에 뿌려지는 돈이 2조원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역술 수강생만도 5만명이나 되고 이 중 60%는 청년층이라고 하니 가히 '점보는 사회'의 실상을 엿보는 듯하다.특히 대통령 선거철이 돌아오면 '용하다'는 무속인들은 상한가를 친다.

후보자 캠프에서는 "아무개 무속인이 무슨 말을 했다"며 이를 구전홍보로 이용하는가 하면,무속인의 예언 한마디에 희비가 엇갈리는 촌극이 벌어지곤 한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 줄을 설까'하는 정치인과 정당인들은 족집게 점집을 찾는 데 온통 촉각을 곤두세운다.

며칠 전 뉴욕 타임스가 우리 사회의 이런 현상을 보도했다.

가장 진보된 정보기술 사회를 이룩한 한국에서 샤머니즘이 부활하고 있는 것은 전통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지적이었다.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미리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사회적 변화가 심할수록 불안은 가중되게 마련인데,그렇다고 샤머니즘에 의존해서 고민을 해결하려 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정치와 점'이라는 공생관계가 아직도 묘하게만 느껴진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