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10년전 부도 악몽' 잊었나 ‥ "임금 올려달라" 4주째 파업

기아자동차의 국내 공장에서 차량 한 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미국 앨라배마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보다 두 배나 많은 인건비가 필요하다. 중국 옌청에 있는 기아차 공장에 비해서는 무려 15배의 인건비를 투입해야 한다.

기아차의 영업사원은 한 달에 평균 2.5대의 차량을 판매한다. 같은 기간에 5.3대를 파는 르노삼성 영업사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아차 공장에서는 인력 배치를 최적화했을 때를 기준으로 근로자 한 명이 하면 충분한 일을 1.67명이 하고 있다. 4분기 연속 영업적자 행진을 하고 있는 가운데 노조는 기본급 대비 8.9%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4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기아차의 현주소다.

기아차 안팎에서는 1997년 경영난에 노조의 장기파업이 겹쳐 결국 회사가 부도에 이르렀던 일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고착화된 저(低) 생산성 구조18일 기아차에 따르면 이 회사의 공장 가동률과 편성효율 등 생산성은 경쟁사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반면 인건비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아차 공장의 편성효율은 59%로 도요타(93%)는 물론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92%)과 중국 베이징 공장(89%)에 크게 못 미쳤다. 기아차 사측이 올해 임금협상에서 노조에 인력 전환배치를 요구한 이유다.

편성효율은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로,예를 들어 편성효율이 50%라는 것은 근로자 한 명이 할 수 있는 작업에 두 명이 배치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아차의 경우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을 1.67명이 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아차는 전환배치를 통해 편성효율을 높이면 연간 46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업사원 1인당 월평균 판매대수는 2.5대로 현대차(3.4대)와 르노삼성(5.3대)에 훨씬 못 미친다. 판매 생산성을 르노삼성 수준으로 높이면 연간 판매량이 10만대 증가하고 매출이 2300억원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아차 영업사원의 경우 기본급이 많고 성과급은 적은 구조가 이 같은 판매 부문의 비효율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장 가동률도 89%로 현대차(96%)보다 낮다. 일본 도요타의 공장 가동률은 98%에 달한다. 기아차 관계자는 "신차를 투입할 때 물량과 인력 배치 등을 놓고 노사 간에 협의기간이 길어져 생산이 지연되고 장기간 라인이 중단되는 문제가 있다"며 "이는 곧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경영실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회사 적자와 임금 인상은 무관

지난해 기준으로 기아차가 차량 한 대를 조립하는 데 투입한 인건비는 89만원. 현대차 미국 공장은 44만원,기아차 중국 공장은 5만8000원에 불과하다. 대당 인건비를 1만원만 낮춰도 연간 102억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기아차 노조는 매년 장기간 파업을 벌이며 임금을 올려 받아 고임금 저효율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기아차 노조는 1991년 이후 지난해까지 16년간 해마다 파업을 벌여 총 44만6278대의 생산 차질을 빚고 4조7962억원의 매출 손실을 발생시켰다. 올해도 기아차는 노조의 파업으로 18일 현재 1만8909대의 생산 차질을 빚고 2774억원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회사가 영업적자를 기록한 지난해조차 노조는 기본급 7만8000원(5.7%)을 올려받고 생산성 향상 격려금과 품질목표 달성 격려금 명목으로 200만원을 지급받았다. 이에 더해 하반기 목표 달성과 생산목표 달성 등의 명목으로 300%의 성과급까지 챙겼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올린 GM대우(7만3000원)와 르노삼성(7만원)보다 임금 인상폭이 컸다.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쌍용차 노조가 임금을 동결하는 등 고통 분담에 나섰던 것과도 대조된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