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암절벽에 피어난 장미처럼 붉은도시 ‥ '요르단 페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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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인 존 버건이 '장미처럼 붉은 도시'라고 노래한 페트라는 요르단이 자랑하는 고대 도시 유적이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오른 페트라는 최근 인터넷 투표로 가린 신 7대 불가사의에도 꼽혀 새삼 주목받고 있다.페트라는 해발 950m 고원 위의 산줄기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모래바위 산이 그 중심이다.
모래바위 산의 안과 밖은 비밀스런 협곡길로 연결돼 있다.
협곡길은 길고 또 좁다.두 팔을 크게 벌리면 닿을 너비의 협곡길 양 옆은 까마득히 치솟은 절벽.그 절벽은 울퉁불퉁해 높은 하늘을 가리고,파열된 듯 터진 길은 갈 지(之)자 행보로 사라졌다가는 나타난다.
협곡길 끝에 이르러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진홍의 빛줄기가 '장엄한 경이'를 펼쳐보인다.
정면 매끈한 사암절벽에 뚜렷이 부각된 신전 모습의 알 카즈네.그 어떤 건축물이 이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을까.날렵하게 뻗어 올라간 기둥들과 조각칼로 정교히 다듬어 놓은 듯한 박공장식 등이 경이로울 뿐이다.
기둥이나 박공을 따로 만들어 세운 것이 아니고 그 높은 수직절벽을 손으로 깎아 만들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는다.
2층 구조인 알 카즈네 꼭대기에는 항아리 모양의 부조가 있는데,이집트의 파라오가 거기에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카즈네(보물창고)란 이름이 붙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화려한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허전할 정도로 텅비어 있다.
누군가 내부의 장식품을 모두 훔쳐간 것이 아닐까.
알 카즈네는 사실 대부분의 페트라 유적과 마찬가지로 무덤이라는 말도 있다.
과연 누가 솜씨를 부렸을까.
지금의 베두인족의 조상인 아랍계 나바테아인이 주인공이라고 한다.
나바테아인은 기원전 600년부터 이곳 페트라에 정착했다.
페트라는 원래 성경속 이삭의 장남인 에서가 이끌던 에돔족의 땅이었다.
그런데 바벨탑을 세운 신바빌로니아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2세가 이스라엘 유다왕국에 침입해 사람들을 바빌론으로 잡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에돔족은 이틈을 타 유다왕국으로 이주했고,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의 차지가 된 것.
나바테아인의 페트라는 크게 번성했다.
자체 동전을 주조해 유통시킬 정도로 큰 이지역 무역거점이었다.
실크로드와 왕의 대로를 비롯한 동서남북을 잇는 교역로가 모두 페트라를 거쳤던 것.성경속에서 아기예수를 찾아 온 동방박사들이 유황과 금 그리고 몰약을 페트라에서 구했다고 한다.
길로 인해 번성한 페트라는 그러나 길 때문에 쇠락의 길을 걸었다.
기원 후 2세기께 이 일대를 수중에 넣었던 로마가 교역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급속히 위축되는 운명에 처했다.
상인들은 또 다른 무역거점으로 흩어져 로마시민으로 흡수됐고,탈주노예들이 그 공백을 메우면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도시로 전락했다.
새로운 길이 뚫려 차와 사람이 그 길로 이동하면 이름조차 희미해지는 '옛길의 운명'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페트라가 부활한 것은 1812년이다.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드빅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면서 1600여년의 긴 어둠에서 벗어났다.
알 카즈네 옆으로 이어지는 길가의 사암절벽에도 크고 작은 신전 모양의 부조가 보인다.
크기만 다를 뿐 모두 알 카즈네와 비슷하다.
굵은 기둥이 늘어선 열주로,있는 그대로의 바위를 깎아 33층의 계단식 의자를 만든 3000명 수용규모의 원형극장 등 로마시대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알 카즈네와 함께 페트라를 상징하는 대사원도 웅장하다.
대사원은 노새도 힘들어하는 절벽길을 1시간 이상 걸어 올라야 만날 수 있다.
8개의 2층 기둥으로 되어 있는 대사원은 폭 40m,출입구 높이만 8m에 달한다.
역시 사암절벽을 깎아 만든 것이다.
원래 용도는 알 수 없지만 내부 벽면에 몇 개의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대사원이라고 부른다.
대사원 앞 광장 건너의 작은 바위산이 필수코스다.
지평선까지 뻗은 발아래의 깊은 협곡 풍광이 페트라 유적과는 사뭇 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하나투어,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9일' 여행 안내
요르단의 정식국명은 요르단하심왕국이다.
아라비아반도 북서부에 있다.
이스라엘,시리아,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는 암만.한반도의 40%인 8.8㎢의 땅에 540만명이 살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 암만에 산다.
한국보다 7시간 늦다.
통화단위는 요르단 디나르.환율은 1디나르에 1345원 선.비자는 입국시 공항에서 받는다.
보통 카타르항공을 타고 카타르 수도 도하를 경유해 요르단의 수도 암만으로 간다.
도하까지는 11시간,도하에서 암만은 2시간30분 걸린다.
페트라는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져 있다.
페트라 유적은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입구에서 대사원까지 말과 당나귀 등을 타고 갈 수 있다.
하나투어(1577-1212)는 '요르단,이스라엘,이집트 룩소 9일'여행을 안내한다.
기독교 성지순례를 겸한 세계 문화유산 탐방 상품이다.
암만∼예루살렘∼누에바∼룩소∼카이로∼페트라를 찾는다.
페트라에서는 조랑말도 타며 와디룸 사막에서는 지프 투어도 즐긴다.에미레이트항공을 타고 매주 화요일 출발한다.
1인당 299만원.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오른 페트라는 최근 인터넷 투표로 가린 신 7대 불가사의에도 꼽혀 새삼 주목받고 있다.페트라는 해발 950m 고원 위의 산줄기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모래바위 산이 그 중심이다.
모래바위 산의 안과 밖은 비밀스런 협곡길로 연결돼 있다.
협곡길은 길고 또 좁다.두 팔을 크게 벌리면 닿을 너비의 협곡길 양 옆은 까마득히 치솟은 절벽.그 절벽은 울퉁불퉁해 높은 하늘을 가리고,파열된 듯 터진 길은 갈 지(之)자 행보로 사라졌다가는 나타난다.
협곡길 끝에 이르러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진홍의 빛줄기가 '장엄한 경이'를 펼쳐보인다.
정면 매끈한 사암절벽에 뚜렷이 부각된 신전 모습의 알 카즈네.그 어떤 건축물이 이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을까.날렵하게 뻗어 올라간 기둥들과 조각칼로 정교히 다듬어 놓은 듯한 박공장식 등이 경이로울 뿐이다.
기둥이나 박공을 따로 만들어 세운 것이 아니고 그 높은 수직절벽을 손으로 깎아 만들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는다.
2층 구조인 알 카즈네 꼭대기에는 항아리 모양의 부조가 있는데,이집트의 파라오가 거기에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카즈네(보물창고)란 이름이 붙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화려한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허전할 정도로 텅비어 있다.
누군가 내부의 장식품을 모두 훔쳐간 것이 아닐까.
알 카즈네는 사실 대부분의 페트라 유적과 마찬가지로 무덤이라는 말도 있다.
과연 누가 솜씨를 부렸을까.
지금의 베두인족의 조상인 아랍계 나바테아인이 주인공이라고 한다.
나바테아인은 기원전 600년부터 이곳 페트라에 정착했다.
페트라는 원래 성경속 이삭의 장남인 에서가 이끌던 에돔족의 땅이었다.
그런데 바벨탑을 세운 신바빌로니아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2세가 이스라엘 유다왕국에 침입해 사람들을 바빌론으로 잡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에돔족은 이틈을 타 유다왕국으로 이주했고,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의 차지가 된 것.
나바테아인의 페트라는 크게 번성했다.
자체 동전을 주조해 유통시킬 정도로 큰 이지역 무역거점이었다.
실크로드와 왕의 대로를 비롯한 동서남북을 잇는 교역로가 모두 페트라를 거쳤던 것.성경속에서 아기예수를 찾아 온 동방박사들이 유황과 금 그리고 몰약을 페트라에서 구했다고 한다.
길로 인해 번성한 페트라는 그러나 길 때문에 쇠락의 길을 걸었다.
기원 후 2세기께 이 일대를 수중에 넣었던 로마가 교역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급속히 위축되는 운명에 처했다.
상인들은 또 다른 무역거점으로 흩어져 로마시민으로 흡수됐고,탈주노예들이 그 공백을 메우면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도시로 전락했다.
새로운 길이 뚫려 차와 사람이 그 길로 이동하면 이름조차 희미해지는 '옛길의 운명'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페트라가 부활한 것은 1812년이다.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드빅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면서 1600여년의 긴 어둠에서 벗어났다.
알 카즈네 옆으로 이어지는 길가의 사암절벽에도 크고 작은 신전 모양의 부조가 보인다.
크기만 다를 뿐 모두 알 카즈네와 비슷하다.
굵은 기둥이 늘어선 열주로,있는 그대로의 바위를 깎아 33층의 계단식 의자를 만든 3000명 수용규모의 원형극장 등 로마시대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알 카즈네와 함께 페트라를 상징하는 대사원도 웅장하다.
대사원은 노새도 힘들어하는 절벽길을 1시간 이상 걸어 올라야 만날 수 있다.
8개의 2층 기둥으로 되어 있는 대사원은 폭 40m,출입구 높이만 8m에 달한다.
역시 사암절벽을 깎아 만든 것이다.
원래 용도는 알 수 없지만 내부 벽면에 몇 개의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대사원이라고 부른다.
대사원 앞 광장 건너의 작은 바위산이 필수코스다.
지평선까지 뻗은 발아래의 깊은 협곡 풍광이 페트라 유적과는 사뭇 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하나투어,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9일' 여행 안내
요르단의 정식국명은 요르단하심왕국이다.
아라비아반도 북서부에 있다.
이스라엘,시리아,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는 암만.한반도의 40%인 8.8㎢의 땅에 540만명이 살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 암만에 산다.
한국보다 7시간 늦다.
통화단위는 요르단 디나르.환율은 1디나르에 1345원 선.비자는 입국시 공항에서 받는다.
보통 카타르항공을 타고 카타르 수도 도하를 경유해 요르단의 수도 암만으로 간다.
도하까지는 11시간,도하에서 암만은 2시간30분 걸린다.
페트라는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져 있다.
페트라 유적은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입구에서 대사원까지 말과 당나귀 등을 타고 갈 수 있다.
하나투어(1577-1212)는 '요르단,이스라엘,이집트 룩소 9일'여행을 안내한다.
기독교 성지순례를 겸한 세계 문화유산 탐방 상품이다.
암만∼예루살렘∼누에바∼룩소∼카이로∼페트라를 찾는다.
페트라에서는 조랑말도 타며 와디룸 사막에서는 지프 투어도 즐긴다.에미레이트항공을 타고 매주 화요일 출발한다.
1인당 299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