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인 I♥KOREA] "한국에서 영화공부 2년 35㎜필름에 담아내고파"

"여주인공 엉덩이에 달린 꼬리는 최대한 진짜처럼 표현해보자."
"분위기가 살짝 비현실적으로 바뀌는 장면이지.조금 특이한 얼굴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좋겠다." 27일 서울 서교동 한국영화아카데미(KFA)의 라운지.차기 영화 시나리오를 놓고 젊은 연출감독과 촬영감독의 토론이 뜨겁다.

'편견과 문화적 차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재치있게 그리겠다는 야심이 현실로 다가서는 순간이다.2년간의 한국 유학생활을 결산하려는 이들에게 20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짧기만 하다.

텐진 촉레와 칼링가 위타나게

텐진 촉레(28·인도)와 칼링가 위타나게(26·스리랑카)는 영화를 배우러 한국에 왔다.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의 교육 프로그램 아시아필름아카데미(AFA)에 참여한 게 한국과 맺은 첫 인연이었다.

이들이 출품한 단편이 우수작으로 선정되면서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매년 두 명씩 뽑는 KASP 장학생이 됐다.

KASP는 아시아의 젊은 영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06년 시작한 장학제도.텐진과 칼링가는 그 첫 번째 수혜자다.한국 영화계가 아시아 영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점찍은 인재인 셈이다.

"부산 국제영화제에 참여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게 될 거란 건 상상도 못했죠.한국에 온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인도에서 영화 단편 작업을 하던 텐진은 지금도 공모전에 붙고 한국에 온 과정 모두 꿈처럼 느껴진다고 했다.스리랑카에서 6년간 촬영일을 해온 칼링가도 마찬가지.스리랑카에는 정규 영화학교가 없어 늘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싶던 터였다.

미국 유학도 생각했지만 아시아적 정체성이 강한 한국이 더 끌렸다고 했다.

막 걸음마를 하는 자국 영화산업에도 젊고 활기찬 한국 영화의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 계산했다.

2년째 접어든 유학 생활은 한국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신촌 하숙집의 아주머니가 해주는 김치찌개와 제육덮밥을 제일 좋아하고,빠듯한 생활비를 아끼는 게 관심사다.

'힘든 게 뭐냐'고 물었더니 "식사 때마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밥을 너무 많이 담아주는 것"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 모범생들의 최근 화두는 아시아를 뒤흔든 한류다.

아시아에서 삼성 같은 대기업으로만 알려져있던 한국이 빠르게 대중문화를 꽃피운 비결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칼링가는 박찬욱,봉준호 감독으로부터 해답을 찾았다.

"'올드보이'나 '괴물'처럼 재미와 예술성을 함께 담아내는 게 한국영화의 저력이죠.젊고 재능있는 영화인이 많은 것도 장점이고요." 촬영을 전공하는 그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강렬한 영상미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최근 콘서트 취소 파문과 콘텐츠 부족 등으로 떠오른 '한류 위기론'에 대해선 텐진이 조심스럽게 조언에 나섰다.

"최근 외국인 대상으로 만든 한국 홍보영화에서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표현하더군요.

홍보를 공격적으로 하다보니 다른 나라의 자존심을 배려하지 않는 경우죠.한국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한류의 장수 비결 아닐까요."

아이디어가 궁하거나 산뜻한 이미지가 그리울 때 둘은 시골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한국의 시골은 조용하고 느긋한 멋이 있어요.

작년에 해남 땅끝 마을을 갔을 땐 고향 생각이 참 많이 났죠."

티베트 출신인 텐진의 가족은 중국의 체제 압박을 피해 인도로 망명한 후 한 번도 고향을 가보지 못했다.

인도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느낀 고독감은 한국에서 처음 찍은 단편영화의 주제가 됐다.

내년에 인도로 돌아가면 고향을 잃은 티베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휴먼스토리'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워놨다.

이번 여름방학만큼은 시골 여행도 없을 예정이다.

모처럼 세운 보길도 여행 계획도 취소했다.

가을까지 완성할 차기작에 온 에너지를 쏟기 위해서다.

촬영을 맡은 칼링가는 기존의 디지털촬영이 아닌 35mm 아날로그 필름작업이란 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기계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영상미를 보여준다는 게 그의 포부다.

"고국에 돌아가면 한국에서 배운 걸 토대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죠.스리랑카나 티베트 영화가 한류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릴 때도 머지않을 겁니다." 그때쯤이면 성공한 영화감독과 촬영감독으로 만나 다시 공동작업을 하겠다고 당당히 포부를 밝혔다.참한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오디션을 잡아놨다며 바삐 일어서는 이들의 모습에서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엿본 듯했다.

김유미 기자/허문찬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