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CEO급 인사시스템 바뀐다

한사람이 2社사업부장 '파격'
CEO-사업부장 분리 … 계열사 영역도 파괴

정교하면서도 전통과 격식을 중시해온 삼성 인사시스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한여름 휴가철에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는가 하면 동일인이 2개 회사의 사업부장직을 맡는 파격이 연출되고 있다.

인사와 조직개편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계열사나 사업부의 형편과 필요에 따라 수시로 이뤄지는 방식이다.재계는 삼성의 이 같은 움직임을 이건희 회장이 지난해부터 주창하고 있는 창조경영과 결부지어 해석하는 분위기다.

유연한 사고와 자유로운 상상력을 기반으로 구현되는 창조경영이 인사 방식에도 그대로 접목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삼성이 2000년 이후 유지해온 '뉴 밀레니엄 인사제도'에 손질을 가하는 것 같다"며 "다른 기업들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최근 드러난 인사시스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사업부장직을 분리하는 것.경영을 총괄해야 하는 CEO의 사업수행 부담을 덜어주면서 차세대 CEO 후보군을 사업부장직에 조기 발탁,조직의 경쟁력을 배가한다는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

지난달 15일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이 조수인 부사장에게 메모리 사업부장직을 넘겨준 것이나 이상완 사장이 이끌고 있는 LCD총괄 조직에 두 개의 사업부장직이 신설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그룹에서 사업부장직은 생산-제조-기술뿐만 아니라 영업-마케팅까지 사업 전 부문을 챙겨야 하는 자리로 권한도 크지만 결과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물론 'CEO-사업부장 분리'가 반드시 세대교체를 염두에 둔 것만은 아니다.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거나 사람과 사람,조직과 조직간에 결합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목적도 담겨 있다.

삼성은 이를 위해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는 계열사 간 인사 장벽도 과감하게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삼성전자 최고의 기술통으로 손꼽히는 김재욱 사장이 부진의 늪에 빠져있는 삼성SDI 디스플레이사업부문장으로 옮긴 것은 향후 그룹 내에서 LCD와 PDP 사업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LCD와 PDP사업은 각각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주력 사업이지만 이제 김재욱 사장의 조율을 거쳐 투자시기 등이 조절될 것으로 보인다.

박종우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이 삼성테크윈의 카메라 사업부문장을 겸직하게 된 상황 역시 '경쟁력 강화'라는 명제 앞에서 한결 유연해진 삼성 인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테크윈은 그동안 광학기기 분야에서 각각 디지털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를 앞세워 경쟁을 해온 게 사실이다.하지만 이번에 박 사장이 2개 사업을 총괄하게 되면서 마케팅 비용은 줄이고 시너지는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