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Report-유럽의 뉴 리더십] (2) 교육에 민간을 참여시켜라‥공립학교도 민간에 운영 맡겨 '교육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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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지하철을 타고 북동쪽으로 50분 정도 가면 해크니 시(市)라는 곳이 나온다.
역 앞엔 너저분한 가게와 행상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영국의 여느 도시보다 소득 수준이 현저히 낮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계 아랍인이 50~60%, 그 다음은 터키계, 그리고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출신들이 모여 사는 '이방인들의 동네'다.
하지만 이곳에서 1년 전 가건물을 짓고 중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페치 아카데미'는 해크니 시의 자랑이다.지난해 180명의 학생을 모집하는 데 무려 1170명이 원서를 냈다.
올해는 응시자가 1250명으로 더 늘었다.
영국의 일반 중·고등학교 응시율이 1 대 1 언저리에 머무는 것과 비교하면 치열한 입학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페치 아카데미가 명문 사립이라서가 아니다. 학비는 일반 공립처럼 정부가 댄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몰려드는 것은 이곳이 영국 교육 개혁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면서 학사 운영이 일반 공립학교와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학부모들의 높은 기대 때문이다.
학생들은 지금은 가건물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다음 달이면 옆에 짓고 있는 새 건물로 옮긴다. 첨단 기기를 갖춘 컴퓨터실,대형 음악당,멋진 레스토랑을 갖추기 위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아카데미(academy)'는 부진한 영국 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토니 블레어 정부의 작품이다. 공립 중에서 학업 수준이 낮은 곳을 선정,학교 수준을 높이기 위해 운영을 민간에 맡긴다는 정책에 따라 새롭게 탄생한 중·고등학교다. 예산은 정부가 대지만 운영은 전적으로 민간이 한다는 점에서 사립 같은 공립인 셈이다.해크니 시의 희망인 페치 아카데미의 경우 이 지역에서 자동차 딜러와 부동산업으로 큰돈을 번 기업가 잭 페치가 세운 재단이 운영한다. 교육 과정이나 인사·학사 관리는 완전한 자율성이 보장된다. 이 학교에서 학사 업무 외에 각종 계약이나 학생 급식,자금 조달 등을 책임 지는 비즈니스 매니저 제니 매클라렌은 "공립이지만 깔끔한 교복을 입히고 규율을 철저히 준수토록 하며 과학과 의학 등에 치중하는 독창적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새 건물 공사가 오는 9월이면 끝나는데도 해크니 시가 다급한 마음에 가건물이라도 짓고 빨리 수업을 진행하라고 독촉,페치 아카데미는 1년 전 양철 지붕 아래서 수업을 시작했지만 공부와 규율만큼은 일반 공립학교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앞서 간다.
페치와 같은 아카데미를 대폭 늘리겠다는 게 고든 브라운 새 총리의 의지다. 브라운은 집권 후 발표한 교육개혁 방안에서 학교와 민간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그 핵심이 바로 아카데미 확대다. 현재 47개인 아카데미를 2010년까지 200개로 늘린다는 당초 목표를 수정,400개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학력 업그레이드가 민간 경영기법의 수혈로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페치 아카데미가 내걸고 있는 모토도 '학생들의 성공을 기업가적인 교육으로 열어 간다'이다.
세계적 투자 은행인 UBS나 회계법인인 KPMG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정하선 주영 한국대사관 교육원장은 이들 기업이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아카데미 운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원장은 HSBC도 아카데미 운영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브라운 정부는 중·고등학교의 질을 높이기 위해 대학에도 아카데미 운영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모든 대학에 아카데미를 운영할 것을 요청하면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초기 자금 200만파운드 납부 의무를 예외로 인정하겠다고 밝힐 정도다.
민간의 힘을 빌려 학교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은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 대학 운영은 정부 예산에만 의존하고 있다. 사회주의 성향의 철학 때문이다. 문제는 재정이 충분치 못해 대학이 시설 확충이나 교육 수준 향상에 필요한 돈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니콜라 사르코지 현 정부가 제시한 개혁안은 대학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돈을 끌어오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학 교육을 국가가 책임 진다는 원칙 때문에 민간으로부터 기부받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개혁안의 첫 결실이 벌써 나왔다. 플로드 베르나르 리옹 1대학이 금융회사인 방크포퓰레르와 의약 연구소인 사노피-파스퇴르의 도움을 얻어 산학 공동 재단을 설립키로 한 것이다. 사르코지 정부는 5년 단임제인 총장 임기도 4년 중임으로 바꾸면서 총장들에게 최고경영자(CEO) 형으로 바뀔 것을 촉구하고 대학원생 선발에도 자율권을 주기로 했다.다만 등록금을 올리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강한 반발을 우려,안을 내기도 전에 접었다. 사르코지의 교육 개혁이 자율성 확대라는 명분으로 대학에 알아서 돈을 더 끌어오라는 짐만 안겨 줬을 뿐 실질적인 개선 방안은 못 된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민간을 통한 개혁은 정부가 주관했던 유럽의 교육 풍토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런던·파리·프랑크푸르트=고광철 국제부장 gwang@hankyung.com
역 앞엔 너저분한 가게와 행상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영국의 여느 도시보다 소득 수준이 현저히 낮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계 아랍인이 50~60%, 그 다음은 터키계, 그리고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출신들이 모여 사는 '이방인들의 동네'다.
하지만 이곳에서 1년 전 가건물을 짓고 중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페치 아카데미'는 해크니 시의 자랑이다.지난해 180명의 학생을 모집하는 데 무려 1170명이 원서를 냈다.
올해는 응시자가 1250명으로 더 늘었다.
영국의 일반 중·고등학교 응시율이 1 대 1 언저리에 머무는 것과 비교하면 치열한 입학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페치 아카데미가 명문 사립이라서가 아니다. 학비는 일반 공립처럼 정부가 댄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몰려드는 것은 이곳이 영국 교육 개혁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면서 학사 운영이 일반 공립학교와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학부모들의 높은 기대 때문이다.
학생들은 지금은 가건물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다음 달이면 옆에 짓고 있는 새 건물로 옮긴다. 첨단 기기를 갖춘 컴퓨터실,대형 음악당,멋진 레스토랑을 갖추기 위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아카데미(academy)'는 부진한 영국 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토니 블레어 정부의 작품이다. 공립 중에서 학업 수준이 낮은 곳을 선정,학교 수준을 높이기 위해 운영을 민간에 맡긴다는 정책에 따라 새롭게 탄생한 중·고등학교다. 예산은 정부가 대지만 운영은 전적으로 민간이 한다는 점에서 사립 같은 공립인 셈이다.해크니 시의 희망인 페치 아카데미의 경우 이 지역에서 자동차 딜러와 부동산업으로 큰돈을 번 기업가 잭 페치가 세운 재단이 운영한다. 교육 과정이나 인사·학사 관리는 완전한 자율성이 보장된다. 이 학교에서 학사 업무 외에 각종 계약이나 학생 급식,자금 조달 등을 책임 지는 비즈니스 매니저 제니 매클라렌은 "공립이지만 깔끔한 교복을 입히고 규율을 철저히 준수토록 하며 과학과 의학 등에 치중하는 독창적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새 건물 공사가 오는 9월이면 끝나는데도 해크니 시가 다급한 마음에 가건물이라도 짓고 빨리 수업을 진행하라고 독촉,페치 아카데미는 1년 전 양철 지붕 아래서 수업을 시작했지만 공부와 규율만큼은 일반 공립학교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앞서 간다.
페치와 같은 아카데미를 대폭 늘리겠다는 게 고든 브라운 새 총리의 의지다. 브라운은 집권 후 발표한 교육개혁 방안에서 학교와 민간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그 핵심이 바로 아카데미 확대다. 현재 47개인 아카데미를 2010년까지 200개로 늘린다는 당초 목표를 수정,400개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학력 업그레이드가 민간 경영기법의 수혈로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페치 아카데미가 내걸고 있는 모토도 '학생들의 성공을 기업가적인 교육으로 열어 간다'이다.
세계적 투자 은행인 UBS나 회계법인인 KPMG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정하선 주영 한국대사관 교육원장은 이들 기업이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아카데미 운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원장은 HSBC도 아카데미 운영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브라운 정부는 중·고등학교의 질을 높이기 위해 대학에도 아카데미 운영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모든 대학에 아카데미를 운영할 것을 요청하면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초기 자금 200만파운드 납부 의무를 예외로 인정하겠다고 밝힐 정도다.
민간의 힘을 빌려 학교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은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 대학 운영은 정부 예산에만 의존하고 있다. 사회주의 성향의 철학 때문이다. 문제는 재정이 충분치 못해 대학이 시설 확충이나 교육 수준 향상에 필요한 돈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니콜라 사르코지 현 정부가 제시한 개혁안은 대학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돈을 끌어오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학 교육을 국가가 책임 진다는 원칙 때문에 민간으로부터 기부받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개혁안의 첫 결실이 벌써 나왔다. 플로드 베르나르 리옹 1대학이 금융회사인 방크포퓰레르와 의약 연구소인 사노피-파스퇴르의 도움을 얻어 산학 공동 재단을 설립키로 한 것이다. 사르코지 정부는 5년 단임제인 총장 임기도 4년 중임으로 바꾸면서 총장들에게 최고경영자(CEO) 형으로 바뀔 것을 촉구하고 대학원생 선발에도 자율권을 주기로 했다.다만 등록금을 올리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강한 반발을 우려,안을 내기도 전에 접었다. 사르코지의 교육 개혁이 자율성 확대라는 명분으로 대학에 알아서 돈을 더 끌어오라는 짐만 안겨 줬을 뿐 실질적인 개선 방안은 못 된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민간을 통한 개혁은 정부가 주관했던 유럽의 교육 풍토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런던·파리·프랑크푸르트=고광철 국제부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