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질 2명 26일만에 석방] 넋 나간 얼굴로 울음만 … 건강 묻자 "괜찮다"

모랫바람이 부는 황량한 아스팔트.스카프를 히잡처럼 둘러 쓴 두 명의 여인이 차에서 내린다.

불안한 표정에 힘없는 발걸음.마중을 나온 두 명의 국제 적십자사 관계자들이 손을 내민다.오열하기엔 그동안의 고통이 너무 컸던걸까.

말없이 눈물만 흘린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 자유의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꼬박 26일이 걸렸다.AP통신의 TV방송사인 APTN은 13일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인 탈레반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김지나씨(32)와 김경자씨(37)의 인도 장면을 동영상으로 공개했다.

몸이 아파 우선 석방된 두 사람은 아프간 부족원로들과 함께 인도 약속 지점인 가즈니주 주도 가즈니시 인근의 아르주(Arzoo) 마을에 도착했다.

이동할 때 이용한 차량은 진한 회색의 도요타 코롤라 승용차였다.아르주 마을은 탈레반에 의해 살해된 고(故) 심성민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다.

APTN은 인질들이 적십자사 관계자들이 다가가자 눈물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옷차림은 피랍 당시와 달랐다.카키색 바지 차림에 머리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가방을 하나씩 들었다.

흡사 무슬림 여인 같았다.

발걸음에 힘이 없었지만 부축이 필요할 정도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차량에 탑승해 있을 때는 무릎에 아프간 전통 셔츠가 놓여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인도 광경을 지켜본 한 주민은 로이터통신에 "이들은 걸음을 걸을 수 있었고 건강도 좋아 보였다"며 "그러나 감정적으로 북받치는지 계속 울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요타 차량에서 내린 뒤 대기 중이던 두 대의 적십자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 하나로 옮겨탔다.

몇몇 외신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지만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기만 했다.

교도통신은 "풀려난 한국인 여성들이 잠시 후 가즈니시(市)에 도착한 뒤 앰뷸런스로 옮겨졌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이들이 가즈니시에 있는 미군기지로 갔다고 전했다.

가즈니시에서 도착한 한국인 여성들은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에게로 인계됐다.

인계 장소는 미군기지 내로 추정됐다.

APF통신은 석방된 한국인 여성 중 한 명이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건강상태가 "괜찮다(okay)"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한국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탈레반측 대표 2명 중 하나인 물라 나스룰라는 미국 CBS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두 김씨의 석방이 지연된 것은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나스룰라는 두 김씨를 12일 인도할 계획이었으나 경찰과 탈레반 무장세력간의 충돌로 가즈니시로 통하는 간선도로가 봉쇄되는 바람에 석방이 하루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탈레반은 12일 "한국인 여성 두 명을 석방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이후 수 차례 인도 시기를 연기했다.나스룰라는 12일과 13일에는 한국측과 탈레반간에 협상이 없었으나 향후 수 일 내에 대면 또는 전화를 통해 양측간 직접 협상이 재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