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WAR] 천년 로마제국 비결은 끊임없는 M&A였다

세계는 지금 M&A 열풍…GEㆍ미탈社 등
기업의 新생존전략 'M&A'

"지성에서는 그리스인에,체력에서는 게르만인에,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에,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에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들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들을 이렇게 묘사했다.그렇다면 이렇게 보잘것없던 로마인들이 '1000년 제국'을 일궈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해답은 끊임없는 인수·합병(M&A)에 있다.

내세울 것 없던 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국가가 무수한 M&A(식민지 정복)를 통해 유라시아의 패권을 거머쥔 것을 놓고 '로마는 오늘날 기업이 벤치마킹해야 할 가장 위대한 표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M&A 전략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한 기업의 운명을 하룻밤 사이 뒤바꿔 놓을 만한 M&A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서다.

합병으로 초대형 기업들이 탄생하고,업계의 질서를 재편할 만한 '메가딜'이 횡행한다.업종을 망라한 M&A는 산업 재편은 물론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동인이기도 하다.

성장 정체와 '샌드위치 위기'로 인해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진 국내 기업들엔 희망의 빛줄기와도 같다.

'먹지 않으면 먹히고 마는' 살벌한 경영환경 속에서 M&A가 기업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세계는 지금 M&A 열풍

세계 1위 철강업체인 인도 미탈의 프랑스 아르셀로 인수는 세계 철강업계의 질서를 뒤흔들어 놓았다.

지난해 395억달러의 거금을 들여 아르셀로를 사들여 몸집을 키운 미탈은 포스코까지 노리며 업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미탈은 M&A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를 써 왔다.

1998년 미국 6위의 철강업체인 인랜드를 인수,세계 10위에서 4위 업체로 발돋움한 뒤 2005년에는 다시 미국의 ISG(International Steel Group)를 45억달러에 합병했다.

400여 차례의 M&A를 통해 세계 최대 기업 자리에 오른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아직도 배가 고픈지 쉴 새 없이 먹잇감(인수 대상 기업)을 찾고 있다.

GE는 230명의 대규모 전담팀을 두고 M&A를 비롯한 돈 되는 사업 발굴에 나선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월례 회의에서 새로운 인수 대상이 있는지 항상 체크하며,300만달러 이상의 M&A에 대해서는 직접 검토해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해 일본 도시바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원전 부문을,닛폰판유리는 영국의 필킹턴을 각각 사들였다.

중국의 차이나일렉트로닉스는 네덜란드 필립스 휴대폰 사업부를 인수했으며,인도 타타그룹은 글락소 지분 30%를 취득한 데 이어 최근에는 포드가 매물로 내놓은 볼보 재규어 등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M&A 관련 정보제공업체인 톰슨 원 뱅커(Thomson ONE Banker)에 따르면 전 세계 M&A 금액과 건수는 △2003년 1조6405억달러,3만2669건 △2004년 2조4235억달러,3만4479건 △2005년 3조2131억달러,3만6690건 △2006년 4조4470억달러,4만915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올 상반기엔 3조55억달러(2만2370건)의 M&A가 이뤄졌다.

이처럼 M&A가 부쩍 활발해진 것은 △경쟁 심화와 성장 정체로 수익성 창출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세계적인 저금리로 자금 조달이 쉬워진 데다 △고수익을 노리는 사모 펀드들이 M&A 시장의 전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M&A로 신성장 동력 찾는 국내 기업들

국내도 더 이상 M&A의 무풍 지대가 아니다.

기업들이 최근 들어 부쩍 국내외 M&A 시장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좁은 국내 시장에서는 신수종 사업을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의 발판을 찾기 위해서다.

최근엔 국내 간판 기업인 삼성그룹까지 그동안 기피해 오던 M&A 전략을 적극 활용키로 했을 정도다.

국내에서는 두산이 대표 선수로 통한다.

지난달 30일 두산인프라코어가 세계 1위의 소형 건설중장비 업체인 잉거솔랜드의 3개 사업 부문을 49억달러에 인수하면서 두산은 단번에 세계 중장비 시장 7위로 올라섰다.

더구나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는 두산이 2005년 인수한 업체다.

앞서 효성도 지난해 굿이어사의 직물 타이어코드 사업을 넘겨받아 이 부문 세계 1위 업체의 자리를 굳혔다.

국내 기업들 간 M&A의 경우 이미 '큰 장'이 선 지 오래다.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지난해 대우건설을 품에 안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외형을 크게 키웠다.

'강덕수 신화'로 유명한 STX그룹은 신대동조선(STX조선) 산업단지관리공단(STX에너지) 범양상선(STX팬오션) 등을 잇따라 인수해 조선·기계 분야의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최평규 회장이 이끄는 S&T그룹은 통일중공업 대우정밀 효성기계 등을 접수,M&A 시장에서는 '큰손'으로 통한다.

유진그룹도 고려시멘트 서울증권 로젠택배 등을 사들여 영토 확장에 적극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알짜 매물이 많은 데다 외환위기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기업들의 실탄도 넉넉해져 M&A를 위한 여건이 어느 때보다 좋다"고 말한다.

실제 국내 M&A 시장의 초대형 매물만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인터내셔널 대한통운 대우조선해양 쌍용건설 대우일렉트로닉스 등 7곳에 달한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271억달러(약 25조원)나 된다.

◆M&A는 생존을 위한 선택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글로벌 M&A시장 참여 금액은 4억5100만달러.일본의 81억3100만달러나 중국의 52억7900만달러에 비해 극히 초라하다.

문제는 글로벌 M&A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소극적인 태도가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중국,인도 기업의 자동차 철강 IT(정보기술) 분야에서의 활발한 M&A가 결국엔 한국 기업을 크게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렇다.

선진국은 물론 후발 신흥국들의 M&A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샌드위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강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선진 기업들의 M&A는 글로벌 과점화를 위해 치밀한 계획 아래 이뤄진다"며 "이들 기업이 성장의 청사진을 그려놓고 M&A를 전략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성장 정체의 늪에 빠진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M&A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