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리더십의 종말

어려운 시대라서 그랬을까.

과거에는 멋진 리더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군신(軍神) 같은 장군,영웅들도 있었고,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열사도 많았다.

독재정권에 맨몸으로 맞선 민주투사들까지.

사회가 업그레이드되고,나라가 발전하면서 리더도 늘어나야 할 것 같은데,주위에 그런 리더들이 점점 줄어들고만 있다.나라의 리더십을 바꾸는 올해만 봐도 그렇다.

흠모하는 후보를 마음에 두고 친구들과 때론 가족들과 설전을 벌이는 일이 이젠 없다.

무관심이라고 간단히 단정짓기도 어렵다.방향은 잡았으되 사람에 끌리는 게 아닐 뿐이다.

이런 일이 왜 생긴 것일까.

리더들 개개인의 능력이나 이미지 문제도 있지만 사실은 권력의 중심이 바뀐 탓이다.유엔미래포럼의 제롬 글렌 회장은 권력의 중심이 농경시대엔 종교,산업시대엔 국가에 있었고 이것이 정보화시대에 기업으로 갔다가 후기정보화시대인 지금 각 개인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빌 게이츠,스티브 잡스,데이비드 베컴 같은 유명 개인뿐 아니라 사용자제작콘텐츠(UCC)를 만들고 위키피디아에 글을 올리는 개인들이 이제 권력의 주인공이다.

이런 시대에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 리더들을 흠모,존경하는 분위기는 형성되지 않는다.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장만,임원만,간부까지만 알던 정보 독과점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내가 사장이라면 이렇게 안할 것"이라며 회사를 뛰쳐나온 이들이 차린 회사들이 수년 사이 재계의 지도를 바꾸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나를 따르라"는 잘 통하지 않는다.

리더십의 종말인 셈인데,뒤집어 말하면 예전의 리더십을 고집해서는 안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리더십의 본질은 비전과 신뢰요,시대가 원하는 스타일은 연결(connect)과 개방성이 골자다.

리더는 맨 앞에 선 사람,그리고 최종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맨 앞에 서있기 때문에 어디로 갈지를 알려줘야 한다.

그것이 비전이다. 무리에 속한 개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는 먼 곳까지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꿈이 중요하다.

나라의 리더가 되고픈 사람은 선진 강국을 꿈꿔야 하고,기업의 리더가 되려는 이는 글로벌 초우량 기업을 목표로 세워야 마땅하다.

신뢰는 최종 책임을 지는 리더의 또 다른 필수덕목이다.

비전과 신뢰를 굳건히 하되 이제 리더는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내려와 횡으로 종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사람들은 '저 위'가 아니라 나와 같은 네트워크 속에서,나와 같은 지분으로 동참하는 사람으로 리더를 취급하고 있다.

그것이 UCC,위키로 표현되는 이 시대의 논리다.

그 속에서 기껏해야 시삽,좋게 말하면 네트워크 허브가 되는 것이 이즈음의 리더십이다.

예전보다는 훨씬 멋없고,힘도 없는 자리 말이다.

사람들은 이제 리더를 부러워는 하되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면 대통령 국회의원 회장 사장 같은 자리에 별 매력을 못느끼고 자기 방식대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 늘어갈 것이다.이미 상당수의 선진국에서 그렇고 우리 사회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