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WAR] '잘못된 M&A'는?…문화적 차이 극복 못하고 핵심역량 융합에 실패

"만약 미국의 내 동료들이 한국 시장에서의 인수·합병(M&A)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면 난 한마디로 답할 수 있다. 나의 대답은 바로 'Don't(하지 말라)'다."

몇 년 전 국내 시중 은행을 인수한 한 미국계 은행의 간부는 M&A 이후의 조직 통합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곤욕을 치른 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왜 이런 평가를 내렸을까.

은행은 피인수 기업뿐 아니라 인수 기업 노조원들까지 파업을 벌이며 경영진을 압박했고,조직이 안정을 되찾고 통합하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M&A에 있어서 가장 큰 과제인 PMI(Post merger integration),즉 '인수 후 통합'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두 조직의 핵심 역량을 성공적으로 융합해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화적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이혼한 사람들이 대부분 '성격 차이'를 결혼생활 실패의 이유로 꼽듯이 M&A의 실패도 대부분 문화적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

예를 들어 1998년 합병한 독일의 다임러 벤츠와 미국의 크라이슬러는 공동 생산,공동 연구개발(R&D) 등 여러 가지 시너지 효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충돌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세계적인 명차 벤츠를 만드는 다임러 직원들은 크라이슬러의 품질을 업신여겨 플랫폼 공유를 꺼렸고,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일하던 크라이슬러 직원들은 독일 기업 특유의 딱딱하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문제점을 늦게나마 인식한 경영진은 부랴부랴 PMI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다.

그런 노력이 허사가 돼 결국 다임러는 지난 5월 크라이슬러를 미국계 사모펀드인 서버러스에 넘기고 9년간의 동거를 청산했다.PMI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두 조직을 얼마나 긴밀하게 운영할 것인지를 우선 정해야 한다.

M&A의 목적과 기업 규모 등에 따라 피인수 기업을 완전히 흡수 통합할 것인지,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보장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보존해야 할 피인수 기업의 핵심 역량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벤처기업의 핵심 역량은 창조적 기업가 정신인데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해 수직적인 대기업의 문화를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전략이다.

이 밖에도 △M&A 계약 체결 직후 최대한 빨리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통합의 속도를 잘 조절하며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해야 통합에 성공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무엇보다 PMI는 M&A 계획 수립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사 단계에서도 '문화적 실사'를 반드시 포함시켜 인사 제도는 얼마나 다른지,부서 내의 위계 질서는 얼마나 강한지 등을 면밀히 살피고 통합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1984년 이탈리아 자누시를 인수한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는 M&A 계약이 성사된 지 불과 몇 시간 후에 스웨덴 회사와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이탈리아 경영진으로 최고경영자를 교체하고,빠르게 시너지 창출을 위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당시 통합 과정에 참여했던 한 관리는 "우리는 인수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모든 계획을 짜놓았다.

통합 과정이 시작된 후 새로운 사항에 대해 의사 결정할 것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인수 직후 1억2000만달러의 적자를 내던 자누시는 4년 뒤 6000만달러의 흑자 기업으로 변신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