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이종철 STX팬오션 사장‥ "'30년 바다 사나이'오션 비즈니스와 인생을 얘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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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 다닐때 中3 입주과외로 학비벌어
이종철 STX팬오션 사장과의 인터뷰는 마치 '양파'를 까는 것 같았다.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껍질이 나오는 양파처럼 대화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회사 사람들은 깔끔한 차림에 부하 직원에게도 존대말을 쓰는 그에게 '영국 신사'란 별명을 안겨줬지만,실제 만나보니 풍부한 감성과 수준급 유머를 겸비한 '재담가'가 더 어울릴 법 했다.
전형적인 '모범생 외모'와 달리 대학 입학 시험 전날 술판을 벌일 정도로 엉뚱한 구석도 있었으니….하지만 화제가 기업과 경영으로 돌려지자 이 사장은 어느덧 냉철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최고경영자(CEO)로 변해 있었다.30년 가까이 '바다 사나이'로 살아온 이 사장의 이력서 뒷면에 적혀진 얘기들은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행주산성 인근 음식점에서 5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종철 STX팬오션 사장과의 대화는 마치 ‘양파’를 까는 것 같았다.
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껍질이 나오는 양파처럼 대화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다.회사 사람들은 깔끔한 차림에 부하 직원에게도 존대말을 쓰는 그에게 ‘영국 신사’란 별명을 안겨줬지만, 실제 만나보니 풍부한 감성과 수준급 유머를 겸비한 ‘재담가’가 더 어울릴 법 했다.
전형적인 ‘모범생 외모’와 달리 대학 입학 시험 전날 술판을 벌일 정도로 엉뚱한 구석도 있었으니….하지만 화제가 기업과 경영으로 돌려지자 이 사장은 어느덧 냉철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최고경영자(CEO)로 변해 있었다.
30년 가까이 ‘바다 사나이’로 살아온 이 사장의 이력서 뒷면에 적혀진 얘기들은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행주산성 인근 음식점에서 5시간 동안 이어졌다.
#가진 게 많으면 걱정도 많아
-벌크선 경기가 사상 최대 호황입니다.요즘 발 쭉 뻗고 주무시겠어요.
“아이구,그런 말씀 마세요.오히려 걱정이 많아요.
가진 게 없으면 걱정이 없는데,가진 게 있으면 지켜야 하잖아요.
잘 나갈 때가 걱정이 제일 많은 것 같아요.잘 안 돌아갈 때는 단순하잖아요.
‘살아 남아야’ 하니까요.직원들을 설득하기도 쉽고.오히려 잘 될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생각으로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다 사나이’인 만큼 술도 잘 드시겠어요.
“저는 기분 좋을 때만 술을 마십니다.기분 나쁠 때는 잠을 자거나, 몸을 자학할 정도로 산에 오르거나 운동장에서 뜁니다.정확한 주량은 모르겠어요.”
-배는 많이 타보셨나요
“참 아이러니해요.배를 타면 망망대해를 보니까 마음이 넓어질 것 같지요?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바다를 본다는 느낌보다는 배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더 크거든요.작은 배는 연평도에 살 때 많이 탔고,큰 배는 1982년 사원시절 때 처음 탔어요.당시 태풍을 만났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배가 붕 떴다가 푹 꺼지는데 ‘안 올라오면 어떡하나’ 싶더군요.”
#집안 대표선수로 대학에 가다
-흔하지 않은 연평도 출신 CEO이시네요.
“아버지가 6.25 전쟁 끝 무렵에 해병으로 복무한 탓에 연평도에서 태어났어요.
뭍(인천)으로 나온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입니다.연평도에 병원이 없는 탓에 형과 동생이 모두 병으로 죽었거든요.원래 3남4녀였는데 남자라곤 달랑 저만 남게 됐죠. 어머니가 ‘여기 있다간 마지막 남은 아들마저 죽겠다’고 해서 급히 인천으로 피신하듯 나왔지요.”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았다고 하는데.
“기억에 남는 즐거운 추억이 거의 없을 정도에요.
어릴 때 잘 못 먹어서 그런지 지금도 식탐이 좀 있어요.
형편이 어렵다보니 대학도 누이들은 못가고 저만 갔습니다.
우리집 대표선수가 된거죠. 사실 공부는 누이들이 더 잘했는데…”
-도시로 나와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연평도에선 잘했는데 인천에 오니까 ‘전교 꼴찌’로 추락하더라고요.
당시엔 담임 선생님이 과외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어머님이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간곡하게 부탁을 했더니 공짜로 과외를 해줬어요.
덕분에 괜찮은 학교에 갔죠.”(이 사장은 당시 명문이었던 제물포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가난 때문에 슬펐던 일은 없었나요
“누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겁니다.
충분히 자질이 있는데도 저 때문에 희생했으니….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돈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여서 더 안타깝지요.”
#사시를 포기하고 회사를 택하다
-대학 학비는 어떻게 충당하셨나요
“입주과외를 했어요.‘중3’ 전문이었습니다.그 때 숙식 제공받고 월 2만~3만원 정도 받았어요.당시 등록금이 5만8000원 정도였으니 꽤 고액이었죠. 매일 2시간씩 가르쳤는데 미리 책 읽어보느라 꽤 많은 시간을 빼앗겼죠.실력은 없어도 참 열심히 가르쳤어요.”
-법대 다니셨는데 고시 공부는 안했나요?
“전혀 안했습니다.직장 생활을 빨리 해야 될 필요 때문이었죠. 온 가세를 동원해 나 홀로 대학에 들어갔는데,고시까지 한다는 게 사치스럽게 느껴졌거든요.결정적으로 실력도 안되는 것 같았고….(웃음)”
-사시를 안한 게 아쉽지는 않으세요.
“제가 보기엔 오히려 사시 패스한 친구들이 지금은 저를 부러워 하는 것 같은데요? 열심히 했다가 실패했다면 모를까 별다른 미련은 없어요.”
-대학 때 데모는 많이 하셨나요.
“‘생업(입주과외)’에 종사하느라 거의 못했어요.
심정적 동조자일 뿐이었죠. 유신체제에 항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괴감은 있었습니다.
서슬 퍼런 시절에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존중받아야 겠지만, 그렇다고 참여 안 한 사람도 비난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해운은 나의 천직
-처음부터 범양에 입사하신 건가요
“첫 직장은 당시 최대 증권사인 삼보증권(대우증권 전신)이었어요.기획실에서 기업 분석하고,신문 스크랩하는 일이 전부였어요.
그렇게 2년을 다니다 친구가 있는 범양상선에 놀러갔는데,한 눈에 반했어요.
여기 저기서 영어로 전화하고,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멋져 보였거든요.
범양상선의 월급이 삼보증권보다 작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요.”
-해운업이 뭐가 좋던가요.
“해운은 참 재미있는 업종이에요.투기적인 성격이 강하거든요.특히 벌크의 경우 갬블(도박)과 비슷해요.
지금은 끊었지만 저도 한 때 갬블을 자주 했었어요.얼마전 김진명씨가 쓴 ‘도박사’란 책을 보면 ‘프로 도박사가 돈을 잃지 않는 비결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평상심을 잃지 않기 때문’이란 구절이 나와요.
해운도 용선료가 낮을 때 배를 빌리고,배 값이 쌀 때 조선소에 발주를 해야 돈을 벌거든요.저랑은 잘 맞는 업종인 것 같아요.”
-뛰어난 영업맨이었다고 하던데요.
“각개 전투에서 승률이 90% 이상이었어요.평상심을 유지한 덕분인 것 같아요.
제 돈이었다면 평상심을 갖기 힘들었겠지만,회사 돈이다보니 평상심이 생기더라구요.
오너 사업가는 못되도 전문 경영인으로 클 수 있는 평상심은 갖췄었나봐요.
그 때 느낀 게 ‘성공하는 사업가가 되려면 돈에 냉정해야 한다’였어요.”
-재테크도 잘하셨나요.
“주식은 안합니다.개인적으로 투자할 때는 평상심이 안 생겨서….(웃음)”
-잘 나가는 영업맨이었는데도 범양상선이 법정관리였을 때 이직을 안했네요
“범양상선은 범양만의 문화적 강점이 있었어요.10년 넘게 법정관리를 받으면서도 직원 누구도 망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요.
신규투자를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기존 역량만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 노하우도 갖고 있었죠. 그 때 임직원들이 쌓은 내공과 새로운 오너십이 결합해서 오늘의 STX팬오션이 된 겁니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다
-STX에 인수되면서 어려움을 겪진 않았나요.
“별로 없었어요.범양상선이 비록 법정관리 기업이었지만 직원들의 역량이나 회사 수익성은 괜찮았거든요.
STX가 인수한 뒤 직원들의 경쟁력은 그대로 살리면서 그동안 못했던 투자를 시작하니 트러블이란 게 있을 수 없었죠.”
-강덕수 회장님과는 호흡이 잘 맞으세요
“강 회장님은 건강한 기업가 정신을 가진 분이예요.
강 회장은 항상 60~70년대의 국가경제를 이끈 정주영 이병철 김우중 회장같은 기업가 정신을 주장합니다.
기업 성장을 통해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요.
저는 이런 경영철학에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강 회장님이 왜 그룹의 대표기업 CEO에 피인수 기업 임원을 앉혔다고 보세요.
“저도 모릅니다.저 역시 CEO가 되기 전에는 만나 뵌 적이 없었거든요.추측컨데 당시 우리 회사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제가 적합하다고 판단하셨겠죠.”
-전문경영인으로 일하다 보면 한계를 느끼지 않습니까.
“영화 ‘트로이’를 보면 ‘신도 인간을 질투한다’는 말이 나와요.신은 죽을 수 없잖아요.죽을 수 있는 것도 옵션인데. 그런 점이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차이에요.
오너는 기업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오너는 무한책임을 갖고 끝까지 기업과 함께 합니다.
포기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시각이 달라요.
이런 점에선 회장님도 (포기할 수 있는) 내가 부러울 때가 있겠지요(웃음).”
#반복적인 운은 실력이다
-처음부터 CEO를 꿈꾸셨나요
“솔직하게 저는 ‘준비 안된 CEO’입니다.영업본부장 시절에 감사가 부르더니 ‘당신, 사장 되려면 재무제표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그래서 저는 “사장 되고 싶은 마음 별로 없다.
재무제표는 재무본부장한테 물어보면 되는거 아니냐”고 했죠. 사장이 되려면 자기를 희생할 각오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저는 그런 준비가 안돼 있었던 것 같아요.저는 ‘등산을 하면 반드시 정상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은데서 멈춰도 된다고 생각해요.하지만 능력이 받춰주고, 그 일이 하고 싶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CEO는 해볼만한 직책이죠.”
-일각에선 STX가 승승장구한데는 운 좋게 조선과 해운이 사상 최대 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복적인 운은 실력입니다.그 반복적인 운을 저희가 보여드릴 겁니다.STX그룹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그만큼 선택과 행동의 속도가 빨랐다는 얘기입니다.
‘문어발식 확장’도 지금 상황에선 잘한 선택이라고 봐요.
호황을 맞은 해운과 조선에서 현금을 창출한 뒤 성장 잠재력이 있는 업종에 투자하는 게 앞으로 5년 뒤,10년 뒤를 내다본 합리적인 대비책 아닐까요? 지역적으로는 중국 인도 아프리카에 투자하고,신규사업으로 에너지 등에 투자하는 거죠.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아니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임에는 틀림없어요."
-CEO가 된 뒤 가장 힘든 건 뭡니까.
“우리나라 CEO들은 대외 행사 같은데 시간을 제일 많이 쓴답니다.미래를 생각하는 일처럼 가치있는 일에 들이는 시간은 훨씬 적어요.
그게 현실이에요.특히 요즘 CEO들은 과거 CEO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과거엔 직급이 높을수록 더 많은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CEO가 부하 직원보다 ‘정보의 차이에 의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 없어요.
정보의 접근성이나 차별성이 없어진 만큼 윗사람이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건 판단력 밖에 없습니다.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죠.”
#자상하지 못했던 남편
-자상한 남편이세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상대가 보는 나는 많이 다른가 봐요.저는 부드럽고 자상한 남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안 그랬나 봅니다.작년에 집사람이 유방암 수술을 했거든요.그래서 연말에 많은 약속을 깨고 집사람과 함께 있었어요.생전 처음 설거지도 하고,요리한답시고 오이도 썰고 그랬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갑자기 눈물을 쏟는 거에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어서 그랬다더군요.
내 생각과 달리 나는 가정적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릴 때 어렵게 성장한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엄격한 경우가 많다던데요.
“자녀 교육에 대해선 거의 관여하지 않는 편이에요.대신 집사람이 심하게 해요(웃음). 이제 사회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됐으니 본인이 하고 싶은 일,보람을 느낄 일을 하면 될 것 같아요.
연예인도 괜찮죠. 문제는 제 자식들은 여전히 20~30년전에 선호하던 직종을 선호한다는 거죠.(이 사장의 장남은 고시생이며, 딸은 D일보 기자다)”
#젊은 친구들에게 하고픈 말
-젊은 친구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한번은 제 아들과 딸이 말다툼을 하더군요.아들이 ‘통장에 300만원 정도 모았다’고 하니까,딸이 ‘오빠 나이에는 그 돈으로 저축할 게 아니라 책을 사든,여행을 가든,학원을 다니든,자기계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맞서는 겁니다.
그 때까지 알뜰하게 저축하는 아들이 대견했던 저도 딸 얘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요즘 젊은 친구들의 행동이 기성세대의 가치에는 어긋날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면에서는 준비된 인재상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업에서 인재란 어떤 사람입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수익을 내는 사람이냐,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스스로의 의사 결정과 판단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기업의 브랜드와 영업망 등도 중요하지만 해운업의 경우 개인을 통해 발현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대신 스트레스도 많아요.
전반적으로 펀드매니저와 비슷해요.”
-젊은 직장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직원들한테 ‘회사는 냉정하고 인색한 곳’이라고 얘기합니다.
어느 회사가 직원들에게 10을 투자했는데 직원들이 8만 가져온다면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은 근본적으로 직원들에게 인색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때로는 회사도 직원들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주고,웬만한 실수를 용인해주기도 합니다.
회사(경영진)와 직원들은 마치 부부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서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요"
-앞으로 어떤 CEO가 되고 싶으세요
“칭찬을 많이 하는 CEO가 되고 싶어요.저 역시 요리 한답시고 오이를 썰 때 집사람이 ‘잘한다’고 칭찬해주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구요.
집사람이 만약 ‘이 인간이 뭐 이렇게 썰어’ 그랬으면 제가 다시 칼질을 하겠습니까.
‘칭찬은 질책보다 효과가 있다’는걸 몸소 깨달았죠.”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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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사장은…
1953년 11월 연평도에서 3남4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뭍(인천)으로 나와 인천중,제물포고를 거쳐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인 증권회사를 2년 만에 그만두고 1979년 STX팬오션의 전신인 범양상선에 입사해 28년째 몸담고 있다.
해외 기업설명회(IR)를 100회 이상 직접 했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짱짱하다.
취미는 등산.매주 토요일 임직원 또는 부인과 함께한다.대학 2학년 때 처음이자 마지막 미팅에서 만난 부인과는 8년간의 열애 끝에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첫 눈에 '필(feel)'이 확 꽂혔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한 때 즐겼던 바둑(기원 1급 수준)은 접은 상태.누이들의 희생으로 자신만 대학에 들어간 게 마음에 걸려선지,노래방 18번도 설운도의 '누이'다.
이종철 STX팬오션 사장과의 인터뷰는 마치 '양파'를 까는 것 같았다.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껍질이 나오는 양파처럼 대화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회사 사람들은 깔끔한 차림에 부하 직원에게도 존대말을 쓰는 그에게 '영국 신사'란 별명을 안겨줬지만,실제 만나보니 풍부한 감성과 수준급 유머를 겸비한 '재담가'가 더 어울릴 법 했다.
전형적인 '모범생 외모'와 달리 대학 입학 시험 전날 술판을 벌일 정도로 엉뚱한 구석도 있었으니….하지만 화제가 기업과 경영으로 돌려지자 이 사장은 어느덧 냉철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최고경영자(CEO)로 변해 있었다.30년 가까이 '바다 사나이'로 살아온 이 사장의 이력서 뒷면에 적혀진 얘기들은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행주산성 인근 음식점에서 5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종철 STX팬오션 사장과의 대화는 마치 ‘양파’를 까는 것 같았다.
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껍질이 나오는 양파처럼 대화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다.회사 사람들은 깔끔한 차림에 부하 직원에게도 존대말을 쓰는 그에게 ‘영국 신사’란 별명을 안겨줬지만, 실제 만나보니 풍부한 감성과 수준급 유머를 겸비한 ‘재담가’가 더 어울릴 법 했다.
전형적인 ‘모범생 외모’와 달리 대학 입학 시험 전날 술판을 벌일 정도로 엉뚱한 구석도 있었으니….하지만 화제가 기업과 경영으로 돌려지자 이 사장은 어느덧 냉철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최고경영자(CEO)로 변해 있었다.
30년 가까이 ‘바다 사나이’로 살아온 이 사장의 이력서 뒷면에 적혀진 얘기들은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행주산성 인근 음식점에서 5시간 동안 이어졌다.
#가진 게 많으면 걱정도 많아
-벌크선 경기가 사상 최대 호황입니다.요즘 발 쭉 뻗고 주무시겠어요.
“아이구,그런 말씀 마세요.오히려 걱정이 많아요.
가진 게 없으면 걱정이 없는데,가진 게 있으면 지켜야 하잖아요.
잘 나갈 때가 걱정이 제일 많은 것 같아요.잘 안 돌아갈 때는 단순하잖아요.
‘살아 남아야’ 하니까요.직원들을 설득하기도 쉽고.오히려 잘 될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생각으로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다 사나이’인 만큼 술도 잘 드시겠어요.
“저는 기분 좋을 때만 술을 마십니다.기분 나쁠 때는 잠을 자거나, 몸을 자학할 정도로 산에 오르거나 운동장에서 뜁니다.정확한 주량은 모르겠어요.”
-배는 많이 타보셨나요
“참 아이러니해요.배를 타면 망망대해를 보니까 마음이 넓어질 것 같지요?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바다를 본다는 느낌보다는 배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더 크거든요.작은 배는 연평도에 살 때 많이 탔고,큰 배는 1982년 사원시절 때 처음 탔어요.당시 태풍을 만났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배가 붕 떴다가 푹 꺼지는데 ‘안 올라오면 어떡하나’ 싶더군요.”
#집안 대표선수로 대학에 가다
-흔하지 않은 연평도 출신 CEO이시네요.
“아버지가 6.25 전쟁 끝 무렵에 해병으로 복무한 탓에 연평도에서 태어났어요.
뭍(인천)으로 나온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입니다.연평도에 병원이 없는 탓에 형과 동생이 모두 병으로 죽었거든요.원래 3남4녀였는데 남자라곤 달랑 저만 남게 됐죠. 어머니가 ‘여기 있다간 마지막 남은 아들마저 죽겠다’고 해서 급히 인천으로 피신하듯 나왔지요.”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았다고 하는데.
“기억에 남는 즐거운 추억이 거의 없을 정도에요.
어릴 때 잘 못 먹어서 그런지 지금도 식탐이 좀 있어요.
형편이 어렵다보니 대학도 누이들은 못가고 저만 갔습니다.
우리집 대표선수가 된거죠. 사실 공부는 누이들이 더 잘했는데…”
-도시로 나와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연평도에선 잘했는데 인천에 오니까 ‘전교 꼴찌’로 추락하더라고요.
당시엔 담임 선생님이 과외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어머님이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간곡하게 부탁을 했더니 공짜로 과외를 해줬어요.
덕분에 괜찮은 학교에 갔죠.”(이 사장은 당시 명문이었던 제물포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가난 때문에 슬펐던 일은 없었나요
“누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겁니다.
충분히 자질이 있는데도 저 때문에 희생했으니….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돈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여서 더 안타깝지요.”
#사시를 포기하고 회사를 택하다
-대학 학비는 어떻게 충당하셨나요
“입주과외를 했어요.‘중3’ 전문이었습니다.그 때 숙식 제공받고 월 2만~3만원 정도 받았어요.당시 등록금이 5만8000원 정도였으니 꽤 고액이었죠. 매일 2시간씩 가르쳤는데 미리 책 읽어보느라 꽤 많은 시간을 빼앗겼죠.실력은 없어도 참 열심히 가르쳤어요.”
-법대 다니셨는데 고시 공부는 안했나요?
“전혀 안했습니다.직장 생활을 빨리 해야 될 필요 때문이었죠. 온 가세를 동원해 나 홀로 대학에 들어갔는데,고시까지 한다는 게 사치스럽게 느껴졌거든요.결정적으로 실력도 안되는 것 같았고….(웃음)”
-사시를 안한 게 아쉽지는 않으세요.
“제가 보기엔 오히려 사시 패스한 친구들이 지금은 저를 부러워 하는 것 같은데요? 열심히 했다가 실패했다면 모를까 별다른 미련은 없어요.”
-대학 때 데모는 많이 하셨나요.
“‘생업(입주과외)’에 종사하느라 거의 못했어요.
심정적 동조자일 뿐이었죠. 유신체제에 항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괴감은 있었습니다.
서슬 퍼런 시절에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존중받아야 겠지만, 그렇다고 참여 안 한 사람도 비난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해운은 나의 천직
-처음부터 범양에 입사하신 건가요
“첫 직장은 당시 최대 증권사인 삼보증권(대우증권 전신)이었어요.기획실에서 기업 분석하고,신문 스크랩하는 일이 전부였어요.
그렇게 2년을 다니다 친구가 있는 범양상선에 놀러갔는데,한 눈에 반했어요.
여기 저기서 영어로 전화하고,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멋져 보였거든요.
범양상선의 월급이 삼보증권보다 작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요.”
-해운업이 뭐가 좋던가요.
“해운은 참 재미있는 업종이에요.투기적인 성격이 강하거든요.특히 벌크의 경우 갬블(도박)과 비슷해요.
지금은 끊었지만 저도 한 때 갬블을 자주 했었어요.얼마전 김진명씨가 쓴 ‘도박사’란 책을 보면 ‘프로 도박사가 돈을 잃지 않는 비결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평상심을 잃지 않기 때문’이란 구절이 나와요.
해운도 용선료가 낮을 때 배를 빌리고,배 값이 쌀 때 조선소에 발주를 해야 돈을 벌거든요.저랑은 잘 맞는 업종인 것 같아요.”
-뛰어난 영업맨이었다고 하던데요.
“각개 전투에서 승률이 90% 이상이었어요.평상심을 유지한 덕분인 것 같아요.
제 돈이었다면 평상심을 갖기 힘들었겠지만,회사 돈이다보니 평상심이 생기더라구요.
오너 사업가는 못되도 전문 경영인으로 클 수 있는 평상심은 갖췄었나봐요.
그 때 느낀 게 ‘성공하는 사업가가 되려면 돈에 냉정해야 한다’였어요.”
-재테크도 잘하셨나요.
“주식은 안합니다.개인적으로 투자할 때는 평상심이 안 생겨서….(웃음)”
-잘 나가는 영업맨이었는데도 범양상선이 법정관리였을 때 이직을 안했네요
“범양상선은 범양만의 문화적 강점이 있었어요.10년 넘게 법정관리를 받으면서도 직원 누구도 망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요.
신규투자를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기존 역량만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 노하우도 갖고 있었죠. 그 때 임직원들이 쌓은 내공과 새로운 오너십이 결합해서 오늘의 STX팬오션이 된 겁니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다
-STX에 인수되면서 어려움을 겪진 않았나요.
“별로 없었어요.범양상선이 비록 법정관리 기업이었지만 직원들의 역량이나 회사 수익성은 괜찮았거든요.
STX가 인수한 뒤 직원들의 경쟁력은 그대로 살리면서 그동안 못했던 투자를 시작하니 트러블이란 게 있을 수 없었죠.”
-강덕수 회장님과는 호흡이 잘 맞으세요
“강 회장님은 건강한 기업가 정신을 가진 분이예요.
강 회장은 항상 60~70년대의 국가경제를 이끈 정주영 이병철 김우중 회장같은 기업가 정신을 주장합니다.
기업 성장을 통해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요.
저는 이런 경영철학에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강 회장님이 왜 그룹의 대표기업 CEO에 피인수 기업 임원을 앉혔다고 보세요.
“저도 모릅니다.저 역시 CEO가 되기 전에는 만나 뵌 적이 없었거든요.추측컨데 당시 우리 회사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제가 적합하다고 판단하셨겠죠.”
-전문경영인으로 일하다 보면 한계를 느끼지 않습니까.
“영화 ‘트로이’를 보면 ‘신도 인간을 질투한다’는 말이 나와요.신은 죽을 수 없잖아요.죽을 수 있는 것도 옵션인데. 그런 점이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차이에요.
오너는 기업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오너는 무한책임을 갖고 끝까지 기업과 함께 합니다.
포기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시각이 달라요.
이런 점에선 회장님도 (포기할 수 있는) 내가 부러울 때가 있겠지요(웃음).”
#반복적인 운은 실력이다
-처음부터 CEO를 꿈꾸셨나요
“솔직하게 저는 ‘준비 안된 CEO’입니다.영업본부장 시절에 감사가 부르더니 ‘당신, 사장 되려면 재무제표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그래서 저는 “사장 되고 싶은 마음 별로 없다.
재무제표는 재무본부장한테 물어보면 되는거 아니냐”고 했죠. 사장이 되려면 자기를 희생할 각오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저는 그런 준비가 안돼 있었던 것 같아요.저는 ‘등산을 하면 반드시 정상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은데서 멈춰도 된다고 생각해요.하지만 능력이 받춰주고, 그 일이 하고 싶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CEO는 해볼만한 직책이죠.”
-일각에선 STX가 승승장구한데는 운 좋게 조선과 해운이 사상 최대 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복적인 운은 실력입니다.그 반복적인 운을 저희가 보여드릴 겁니다.STX그룹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그만큼 선택과 행동의 속도가 빨랐다는 얘기입니다.
‘문어발식 확장’도 지금 상황에선 잘한 선택이라고 봐요.
호황을 맞은 해운과 조선에서 현금을 창출한 뒤 성장 잠재력이 있는 업종에 투자하는 게 앞으로 5년 뒤,10년 뒤를 내다본 합리적인 대비책 아닐까요? 지역적으로는 중국 인도 아프리카에 투자하고,신규사업으로 에너지 등에 투자하는 거죠.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아니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임에는 틀림없어요."
-CEO가 된 뒤 가장 힘든 건 뭡니까.
“우리나라 CEO들은 대외 행사 같은데 시간을 제일 많이 쓴답니다.미래를 생각하는 일처럼 가치있는 일에 들이는 시간은 훨씬 적어요.
그게 현실이에요.특히 요즘 CEO들은 과거 CEO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과거엔 직급이 높을수록 더 많은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CEO가 부하 직원보다 ‘정보의 차이에 의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 없어요.
정보의 접근성이나 차별성이 없어진 만큼 윗사람이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건 판단력 밖에 없습니다.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죠.”
#자상하지 못했던 남편
-자상한 남편이세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상대가 보는 나는 많이 다른가 봐요.저는 부드럽고 자상한 남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안 그랬나 봅니다.작년에 집사람이 유방암 수술을 했거든요.그래서 연말에 많은 약속을 깨고 집사람과 함께 있었어요.생전 처음 설거지도 하고,요리한답시고 오이도 썰고 그랬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갑자기 눈물을 쏟는 거에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어서 그랬다더군요.
내 생각과 달리 나는 가정적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릴 때 어렵게 성장한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엄격한 경우가 많다던데요.
“자녀 교육에 대해선 거의 관여하지 않는 편이에요.대신 집사람이 심하게 해요(웃음). 이제 사회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됐으니 본인이 하고 싶은 일,보람을 느낄 일을 하면 될 것 같아요.
연예인도 괜찮죠. 문제는 제 자식들은 여전히 20~30년전에 선호하던 직종을 선호한다는 거죠.(이 사장의 장남은 고시생이며, 딸은 D일보 기자다)”
#젊은 친구들에게 하고픈 말
-젊은 친구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한번은 제 아들과 딸이 말다툼을 하더군요.아들이 ‘통장에 300만원 정도 모았다’고 하니까,딸이 ‘오빠 나이에는 그 돈으로 저축할 게 아니라 책을 사든,여행을 가든,학원을 다니든,자기계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맞서는 겁니다.
그 때까지 알뜰하게 저축하는 아들이 대견했던 저도 딸 얘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요즘 젊은 친구들의 행동이 기성세대의 가치에는 어긋날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면에서는 준비된 인재상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업에서 인재란 어떤 사람입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수익을 내는 사람이냐,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스스로의 의사 결정과 판단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기업의 브랜드와 영업망 등도 중요하지만 해운업의 경우 개인을 통해 발현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대신 스트레스도 많아요.
전반적으로 펀드매니저와 비슷해요.”
-젊은 직장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직원들한테 ‘회사는 냉정하고 인색한 곳’이라고 얘기합니다.
어느 회사가 직원들에게 10을 투자했는데 직원들이 8만 가져온다면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은 근본적으로 직원들에게 인색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때로는 회사도 직원들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주고,웬만한 실수를 용인해주기도 합니다.
회사(경영진)와 직원들은 마치 부부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서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요"
-앞으로 어떤 CEO가 되고 싶으세요
“칭찬을 많이 하는 CEO가 되고 싶어요.저 역시 요리 한답시고 오이를 썰 때 집사람이 ‘잘한다’고 칭찬해주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구요.
집사람이 만약 ‘이 인간이 뭐 이렇게 썰어’ 그랬으면 제가 다시 칼질을 하겠습니까.
‘칭찬은 질책보다 효과가 있다’는걸 몸소 깨달았죠.”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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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사장은…
1953년 11월 연평도에서 3남4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뭍(인천)으로 나와 인천중,제물포고를 거쳐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인 증권회사를 2년 만에 그만두고 1979년 STX팬오션의 전신인 범양상선에 입사해 28년째 몸담고 있다.
해외 기업설명회(IR)를 100회 이상 직접 했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짱짱하다.
취미는 등산.매주 토요일 임직원 또는 부인과 함께한다.대학 2학년 때 처음이자 마지막 미팅에서 만난 부인과는 8년간의 열애 끝에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첫 눈에 '필(feel)'이 확 꽂혔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한 때 즐겼던 바둑(기원 1급 수준)은 접은 상태.누이들의 희생으로 자신만 대학에 들어간 게 마음에 걸려선지,노래방 18번도 설운도의 '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