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중립 지켜달라" ‥ DJ "내가 판단할 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29일 당 후보로서는 처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정국 현안에 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눴다.

이날 자리는 대선을 앞두고 '외연 확대'를 위해 충청·호남권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이 후보와 '대선역할론' 논란에 휩싸인 김 전 대통령의 '만남'이어서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이 후보는 최근 범여권 경선과정에 적극적인 '개입'의지를 보이고 있는 김 전 대통령에게 직접 선거 중립을 요구했으나,김 전 대통령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사실상 대선중립 요구를 거부했다.

◆8개월 만에 동교동 방문

이 후보는 이날 오후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해 40여분간 차담(茶談)을 나눴다.올초 신년인사 이후 8개월여 만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당초 대선을 앞두고 정계 원로인 김 전 대통령의 조언을 들을 목적으로 마련됐다.

회담 초기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이 후보가 "처음 치러본 경선이라 봉합이 될까 걱정이 많았다"고 소회를 밝히자,김 전 대통령은 "아주 봉합이 잘 된 것 같다"며 웃는 얼굴로 화답했다.

그러나 주제가 '대선구도'로 넘어가면서 가시돋친 얘기가 오갔다.

이 후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했으니 (대선에서)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으면 한다"며 김 전 대통령의 대선 개입을 우려하자,김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너무 세서 (내가) 도와줄 필요가 있느냐"고 맞받아쳤다.이에 이 후보는 "그렇지 않다.

나는 호남에 자주 간다.

호남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고 응수했고,김 전 대통령은 "(호남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이 높다고 신문에 났던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 후보는 이어 "아직 여권의 후보가 결정되지 않아서 그렇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역색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자,김 전 대통령은 "이미 호남은 영남 사람인 노무현 대통령을 뽑은 적이 있다"고 상기시켰다.

이 후보가 "그것은 김 전 대통령 때문이 아니냐.전직 대통령을 잘 모시려고 방문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으나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알아서 잘 판단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이 후보 측은 DJ와의 회동에 대해 '외연 확대'라는 측면에서 실리를 챙겼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동교동 방문을 계기로 지역과 계층,이념의 경계 뿐 아니라 기존 정당의 틀마저 허물면서 외연을 확대하는 밑그림 작업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두환·버시바우 예방

이 후보는 이에 앞서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같은 집에서 싸우면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들춰져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박 전 대표 쪽 사람들이 밉더라도 껴안아야 한다"고 주문했다.또 이날 탈레반에 납치된 19명의 한국인 피랍자 석방과 관련해 전 전 대통령은 "내가 인질되고 풀어줄 수 없나 고민했다"며 "나는 특수훈련을 받아서 거기서 생활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