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국정원장의 '노출'

마지막 인질 7명이 풀려나면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가 종료된 지난달 31일 저녁.아프간 수도 카불의 세레나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뜻밖의 인물이 피랍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름 아닌 한국 정보기관의 수장(首長)인 김만복 국정원장.우리 정부협상 대표단의 실체가 공식 확인되는 순간이었다.김 원장은 노출 즉시 내외신의 집중적인 타깃이 됐다.

피랍자 가족과 국제통화를 연결시켜주는 친절한 모습은 화면에 그대로 잡혔고 호텔 로비를 서성이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찍혔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말)하면 안 되는데…"라면서도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지 않았다.현지 대책반장으로 외교부의 1급 고위직이 간 상황에서 국정원장까지 가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파견인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청와대도 "노출될 줄 몰랐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태 해결을 책임지겠다는 본인의 강한 의지에 따른 것"이라며 청와대 지시설을 부인했다.어찌됐건 청와대에 사전보고가 됐고 노 대통령으로부터 전결권을 받아간 셈이다.

그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기자 회견장에까지 나설 이유가 있었을까.

더구나 테러단체와 직접 협상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정부가 엄청난 외교적 손실을 입은데다 천문학적인 몸값 지불설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국정원 예비비가 나간 것 아니냐에서부터 김 원장이 직접 간 것도 몸값 때문이라는 억측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는 김 원장의 애매한 답변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일반인도 상식처럼 아는 내용이지만 국정원은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곳이다.

정보기관은 실패한 작전이 아니면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그만큼 존재와 활동 자체가 비공식적이다.

김 원장은 국정원 역사상 첫 공채출신이다.

정보기관 수장의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1974년 중앙정보부에 발을 들이면서 숱하게 보고 느꼈을 것이다.차라리 이번 노출에 개인적인 공명심 외에 다른 이유가 없기를 바란다.

이심기 정치부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