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공기업 망령들

1970년대 영국경제는 한마디로 우울했다.

노동당 집권하에서 기간산업을 국영화하고 복지국가를 추구하면서 경제의 성장활력은 떨어지고,제조업은 부진을 면치 못했으며, 실업률은 올라가기만 했다.제조업이 계속 사그라들자 이것을 탈산업화로 봐야 할지, 아니면 제조업 공동화로 봐야 할지 논쟁이 격화되었고 여러 주장들이 제기됐다.

'국민소득 증가에 따른 자연스런 과정' '제조업 노동생산성이 높아진 결과' '제조업의 서비스화' '기업들의 해외투자 증가' 등등.

그런데 전혀 다른 관점의 진단이 등장했다.베이컨(Bacon)과 엘티스(Eltis),이 두 사람은 정부부문 비대화로 민간부문,특히 제조업 활동이 죽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사라진 생산자들(too few producers)'이라는 부제가 달린 '영국 경제의 문제'(1976년)라는 저서에서였다.

이들의 논리는 명료했다.확대되는 비생산적 정부부문을 뒷받침할 재원이 어디서 나오느냐며 의문을 던진다.

결국은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기업에 과세를 늘리면 기업 이윤율 저하→투자의욕 감퇴→제조업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개인에 대한 소득세를 올리면 문제가 달라질까.소득세를 인상하면 임금이 그만큼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당시 영국처럼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면 임금교섭에서 소득세 인상분이 기업에 전가돼 기업이윤 감소로 이어지기는 마찬가지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한 가지,이들은 정부부문 비대화로 인한 노동력 이동의 왜곡 문제도 지적했다.

정부부문이 계속 확대돼 노동력이 이동하면 그만큼 민간부문 노동력은 줄어들고 임금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들로선 원하는 인력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이는 곧 기업이윤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논리를 바탕으로 당시 영국 제조업의 종말을 앞당기는 주범은 다름 아닌 정부였다는 게 베이컨과 엘티스의 진단이었다.

오늘날 이는 정부부문이 비대해지면 시장경제가 위축된다는 이른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를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

공기업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감사원의 숱한 지적에 이어 기획예산처가 국회에 제출한 경영평가보고서에 나타난 공기업의 비효율성은 그 사례를 일일이 적시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민영화되거나 없어져야 마땅한 공기업들이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폐해이고,지금 그 폐해는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 등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또 공기업들이 소위 '신이 내린 직장','신도 모르는 직장'으로 알려지면서 인력이 그 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베이컨과 엘티스가 관찰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여기에 복지라는 명분을 내건 무더기 공무원 증원,늘어나는 속도가 심상치 않은 나라빚,계속되는 적자편성 예산 등은 경제사(經濟史)적으로 볼 때 하나같이 좋지 않은 징조들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공기업 연금개혁방안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공무원 감축안을 내놓고 공공부문을 대대적으로 개혁하자는 '프랑스판 문화혁명'을 선언했다.

실업률이 엄청 높은 나라에서 향후 5년간 공공부문 일자리 10만개를 오히려 줄이겠다고 나섰으니 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개혁할 때를 놓치면 바로잡기가 그만큼 힘들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