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편안한 평화와 불안한 평화

南 盛 日 <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

대통령이 2박3일의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다.이번 북한방문에서의 주요 화두는 역시 평화와 경제협력인 것으로 파악된다.

평화와 경제협력을 적극 선전하는 논지는 남북간에 평화를 최우선시하는 것이 긴밀한 경제협력을 증대시키며 동시에 경제협력의 증대는 상호 교류를 확대하고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평화체제의 유지 발전에 더욱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평화와 경제협력의 선순환구조에 대한 주장이다.평화는 모두가 누리고 싶은 보편가치이다.

그래서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과 북의 정상이 서로 악수하고 나란히 걷는 모습은 여전히 우리를 설레게 만든다.

진정 이 땅에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그러나 남북 집권층이 다정한 모습을 연출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겪은 그간의 여러 경험은 사태를 냉정하게 보게 한다.

금강산 관광이 열린 몇 년 후 가을 동료교수들과 금강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김일성 주석이 경치를 찬탄했다는 계곡의 어느 지점에선가 쉬고 있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북한 지도원의 소리침으로 평화가 깨졌다.내용인즉 김일성 주석이 이곳에 다녀갔다는 기념비를 세우고 그 둘레를 쇠사슬로 둘러쳐 보호하고 있는데 동료교수의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뛰어다니다 그 네모난 보호사슬의 한쪽 귀퉁이를 건너뛰는 불경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애를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런 불경을 저지르냐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북한 여성 지도원 앞에서 얼굴이 하얗게 된 우리 측 안내원은 두 손을 싹싹 빌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영문을 모르는 일곱 살배기는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잔뜩 겁먹은 큰 눈으로 쇠사슬과 땅바닥만 번갈아 보고 있었다.

동료교수는 답답함과 분을 참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우리 모두는 죄인의 침묵으로 서있었다.

금강산의 평화는 그렇게 조각났다.

현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평화 구축을 위해서라면 경제협력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표현이야 점잖지만 솔직히 평화를 살 수 있다면 돈을 쓰는 데 인색하지 말자는 말이다.

좋다.

평화라는 편익을 얻기 위해 경제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비용을 지불한다 하자.문제는 평화라는 명분에 집착하여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해주고 보자는 태도다.

평화만 유지되면 다 잘 될 것이라는 환상으로 자기최면을 걸면서 경제협력만 확대하겠다는 것은 자칫 나라를 망칠 수 있다.

경제협력의 내용도 따져야겠지만 우리가 얻을 평화라는 것이 어떤 내용물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평화에도 두 가지가 있다.

편안한 평화와 불안한 평화가 있다.

예컨대 중동지역의 평화는 평화협정이라는 틀을 가졌지만 불안한 평화다.

반면에 통일독일의 평화는 편안한 평화이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평화는 당연히 편안한 평화다.

줄 것 다 주면서도 상대방 눈치 살피고 혹시나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는 불안한 평화가 아니다.

사람과 물자가 왕래하는 가운데 자유가 숨쉬는 그런 평화가 편안한 평화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불할 용의가 있는 평화는 시민과 기업의 자유가 보장되는 평화다.

남북간에 편안한 평화 속에 경제협력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의 체제위험(system risk)이 사라져야 한다.

1992년 비핵화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이 계속되었고 2000년 6·15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서해교전이 일어난 경험에 비추어볼 때 단순히 평화선언으로 체제위험이 없어졌다고 할 수 없다.

북한이 실질적인 핵 포기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선결과제이고 개혁과 개방으로 체제 자체가 변해야 한다.

또한 일인 숭배체제의 경직성을 타파해야 한다.금강산의 평화를 깬 것은 일곱 살배기의 무례함이 아니고 엉뚱한 기념비를 세워놓고 광적으로 집착하는 경직성이다.

그런 위험요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편안한 평화와 경제협력은 기대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