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남북정상회담] 회담 하루 연장 돌연 제의ㆍ철회 전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3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평양에 하루 더 머물러 달라고 전격 제안했던 것에 대해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고 해석했다.

서로 더 토론할 만한 주요한 '대립 의제'가 불거졌던 것으로 볼수도 있다.그러나 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철회하는 형식을 밟음에 따라 정상 외교에서 있을 수 없는 즉흥적인 제안을 냈다.

북한 관계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노련한 협상술이 유감없이 발휘됐다는 분석도 내놨다.

◆아리랑 공연 보여주려 한듯김 위원장은 오후 2시45분 시작된 이날 2차 회담 첫머리에 "기상 일정이 좋지 않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하루 일정을 늦추는 것으로 하고 모레 아침에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갑자기 제안했다.

선전용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보여주고 싶어했을 수도 있다.

그때만 해도 이 행사는 비 때문에 진행 여부가 불투명했었다.이에 노 대통령이 "나보다 센 권력 두군데가 있는데,경호·의전 쪽과 상의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김 위원장은 "대통령이 결심을 못하시냐"고 다그치듯 다시 권했다.

노 대통령은 "큰 것은 제가 결정하지만 작은 일은 제가 결정하지 못한다"고 계속 유보적 자세를 보였다.

이후 서울에서는 '체류연장 검토'라는 정부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김 위원장은 그러나 오후 4시25분쯤 회담을 마치면서 "충분히 대화를 나눴으니 연장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을 바꿨다.

"남측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라며 제안 철회의 입장을 내놨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회담이 매우 좋은 분위기에서 효율적으로 진행돼 예상보다 짧은 시간에 합의에 이르게 되자 스스로 제안을 거두어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 아리랑 행사를 예정대로 열었는데 김 위원장이 오후 회담 도중 기상 상황이 나아졌다는 보고를 받았을 수도 있다.

◆노련한 김정일의 협상술

표면적으로는 아리랑 공연이 하나의 이유였던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김 위원장의 협상술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상회담에서 일정을 갑자기 바꾸자고 제안하는 것은 외교 상식에 맞지 않는다.

허문영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대외적으로는 협상술이고,대내적으로는 통치술"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주고 대내적으로는 '남조선 대통령이 오가는 것도 장군님이 결정하신다'는 과시용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 영접 때 빨간 카펫 위에 꼼짝도 않고 서서 노 대통령이 걸어와 인사하는 모양새를 연출한 것처럼 기싸움 차원의 전략적 언급이라는 설명이다.

당시 태도에 대해서도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협상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성급했던 중간 발표

정부 대표단은 일정 연장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담 도중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발표해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의 변덕에 휘둘린 꼴이 됐다.

내부적으로는 심지어 "하루 더 하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대표단은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과 진지하게 할 얘기가 많은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북핵 6자회담의 합의문 발표가 지연됐기 때문에 합의문 발표를 기다렸다가 한반도 평화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오전 회담 의제 중 '난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평양=공동취재단/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