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문화街] 장이머우 감독이 검은 옷을 입는 이유?

10월 들어 각종 영화 행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4일 부산에서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해 '영화의 바다'에 풍덩 빠질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영화제에 가면 영화를 보는 재미와 함께 감독이나 배우 등 스타를 직접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그들을 초청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워낙 바쁜 데다 '콧대'가 높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할리우드 스타들은 내한할 때 갖가지 조건들을 붙인다.

그 세세한 내용을 모은 것은 때로 A4용지로 몇 십장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규모의 호텔룸이어야 하고,방에는 항상 어떤 과일과 어느 회사의 물이 구비되어야 하며,식사는 어떤 것이어야 하고,휴식 시간은 어느 정도여야 한다는 것 등이다.그래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내한을 하면 관련 영화사들은 초긴장 상태가 되곤 한다.

반면 감독들은 소박하게 머물다가는 경우가 많다.

그 소박함 때문에 박수를 많이 받는 감독 중 한 명이 바로 장이모 감독이다.중국 5세대 감독의 선두 주자로 칸과 베니스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은 거장으로,한국도 가끔 찾았다.

내한했을 때와 해외 영화제를 통해 서너 번 인터뷰를 했는데,항상 검소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때를 잘 안타니까"라고 대답하며 소년처럼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워낙 명성이 높은 감독이고,근래 '영웅' '연인' '황후화' 등 무협이 가미된 화려한 영화들을 연출했기 때문에 그 검소함이 의아했다.

하지만 그는 1980∼90년대 중국 농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 '황무지' '붉은 수수밭' '인생' '집으로 가는 길' 등을 연출해 '농촌의 감독'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소박하다.

1999년 가을 그와 함께 했을 때의 일화가 떠오른다.

당시 그의 농촌영화인 '책상서랍 속의 동화'가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내한했다.

부산을 찾은 당일 인터뷰를 앞두고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유현목 감독,장이모 감독 등과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영화제 측에서는 당연히 손님인 장이모 감독에게 "어떤 음식을 드시고 싶냐"고 물었는데 그는 주저하지 않고 "서민들이 식사하는 곳에서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심 비싸고 맛있는 집을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던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자갈치 수산시장의 2층 상가에 있는 한 회센터.그곳에서 모듬회와 회덮밥을 맛있게 먹던 장이모 감독의 모습은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영화를 보면 그 감독의 마음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은연중에 그 심성이 스크린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장이모 감독의 영화를 보면 그가 농촌을,또 농촌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작년에 개봉했던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도 그렇다.

당시 영화계에 '진정성 있는 영화'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가을의 정취가 더해가는 길목에서 한 감독의 삶,그리고 우리의 삶이 담긴 '진정성이 있는 영화'가 더욱 그리워진다.

< 이원 영화칼럼니스트·무비위크 취재팀장/ latehope@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