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연극 '피의 결혼'‥ 국악과 플라멩코 잿빛사랑의 화음

스페인과 한국 여성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고 생명력도 강인하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많은 전쟁으로 남자들이 희생되면서 여자 홀로 가정을 이끌 수밖에 없었던 역사도 비슷하다.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쓴 연극 '피의 결혼'이 우리 정서에 친숙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극단 연희단거리패(대표 이윤택)가 정동극장 무대에 올린 연극 '피의 결혼'은 창의적인 해석으로 전통극의 지평을 넓힌 이윤택씨의 연출에 힘입어 큰 공감을 얻고 있다.

무대는 남편과 큰아들을 잃은 여인이 둘째 아들의 결혼을 승락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하지만 신부는 결혼식 날 밤 유부남인 옛 애인과 도주한다.

이들을 뒤쫓던 신랑은 신부의 옛 애인과 결투를 하고 결국 둘 다 서로의 칼에 죽고 만다.

이번 무대에서는 아코디언과 기타 등으로 이루어진 플라멩코 반주에 한국의 전통 가락이 어우러진 음악이 관심을 끈다.플라멩코 반주가 한국의 남도 소리와 많이 닮았다는 평가를 받아온 만큼 민요 가락과의 조화는 신선하면서도 자연스럽다.

현대 무용가 차진엽의 안무도 볼 만하다.

특히 모든 배우가 함께 플라멩코를 추는 장면은 관객을 압도한다.재치있는 대사는 심각한 극의 분위기에서 보는 사람의 부담감을 덜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집중력을 흐리게 한 요소들도 있다.

결혼식 장면에서는 배우들의 동작과 배경 음악이 일관성 없이 산만하게 전개돼 극에 몰입하기 힘들다.

주인공인 '어머니' 역을 맡은 김소희는 발군의 연기 실력을 뽐내지만,극의 끝부분에서는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강인함보다는 오히려 삶의 희망을 포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신부'를 연기한 한혜진은 대사의 강약을 살리지 못했다.

'일하는 여자'의 차민엽과 '이웃 여자'의 박민선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나이 지긋한 극중 인물과 실제 나이의 차이를 메우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다.28일까지.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