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세계화와 저가 혁명

[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불쌍한 스티브 잡스.애플의 사령탑인 그는 최근 사과문을 발표했다.애플의 야심작 '아이폰'을 출시한 지 10주 만에 판매 가격을 599달러에서 399달러로 200달러 내렸기 때문이다.

일찍 아이폰을 산 고객들에게는 100달러를 되돌려주기로 했지만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심지어 뉴욕의 한 여성은 애플을 상대로 100만달러짜리 소송도 제기했다.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잡스가 부당한 이익을 챙기려고 소비자들에게 속임수를 쓰다 들킨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하나는 '저가 혁명(The Cheap Revolution)'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화(Globalization)'다.

이 두 가지가 아이폰 가격을 떨어뜨리고 애플 마니아들을 화나게 한 근본 요인이다.'저가 혁명'은 '무어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정보기술(IT) 업계의 기본 원칙에서 기인한다.

무어는 반도체를 세상에 처음 내놓은 '페어차일드 반도체'라는 회사를 설립한 사람이다.

그는 반도체 사업을 하다가 하나의 법칙을 발견했다.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를 때마다 똑같은 성능의 반도체 칩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가 반으로 준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1965년,무어의 법칙이 탄생한 순간이다.

몇 년이 흐른 후 무어의 이 같은 '직감'은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카버 미드 교수의 손을 거쳐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2배씩 증가하는 주기도 '18개월'로 정교해졌다.

1980년 초반의 퍼스널 컴퓨터는 지금과 비교하면 한심한 수준이다.

기초적인 계산작업과 문서작성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녹색 바탕에 흰 글씨가 기어가던 컴퓨터 화면은 곧바로 다양한 그래픽이 곁들여진 '윈도'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이처럼 18개월이 지날 때마다 컴퓨터의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진다는 것이 '무어의 법칙'의 앞면이라면 똑같은 성능의 컴퓨터 가격이 18개월마다 절반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 뒷면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캐나다 회사 '리서치인모션스'가 만든 '블랙베리(PDA의 일종)'를 통해 쓰고 있다.

리서치인모션스는 이 제품을 하나 팔 때마다 인텔에 마이크로칩 사용대가로 20달러를 지불한다.

15년 전인 1992년에는 똑같은 성능의 칩을 400달러를 주고 사용했다.

가격이 20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세계 경제에 몰아친 '세계화'라는 광풍도 애플의 아이폰 가격을 떨어뜨린 요인이다.

낮은 임금을 무기로 앞세운 중국 인도 등이 세계 경제에 합류하면서 599달러짜리 아이폰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보다 훨씬 싼 가격에 유사한 물건을 내놓을 수 있는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체코의 소비자가 599달러라고 써진 아이폰의 가격표를 봤다면 당장 애플 본사에 항의 전화를 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애플이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뉴욕에 넘쳐나는 소송은 취소돼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한 빨리. 정리=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이 글은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의 발행인 '리치 칼가르드'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저가 혁명(The Cheap Revolution)'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