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12번째 PIFF

5일,부산 대연동 CGV 상영관으로 올라가는 승강기 안.부산영화제(PIFF) 출품작 일정표를 든 얼굴이 낯익었다.

소설 '숲속의 방'의 작가 강석경씨.경주에서 영화제 참가차 왔다고 했다.근 20년 만이었다.

거리에서 만난 서울 박영덕화랑 대표 역시 10여년 만이었다.

PIFF 덕에 이뤄진 조우였다.강석경씨와 함께 본 영화는 '아빠의 화장실'.1988년 남미 우루과이의 한 마을에 교황과 함께 5만명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벌어진 일을 담았다.

자전거로 국경 너머 브라질에서 각종 물품을 밀수해 푼돈을 벌던 주인공은 음식장사를 하겠다는 이웃과 달리 공중화장실로 목돈을 만질 계획을 세운다.

딸의 대학진학을 위해 감춰둔 아내의 쌈짓돈을 우려내는 등 우여곡절 끝에 나무문을 달고 변기를 설치한다.그러나 교황 방문 행사 참석자는 불과 수백명.주인공의 꿈도,빚을 내 소시지와 파이를 잔뜩 만든 마을사람들의 꿈도 산산조각난다.

영화는 가난하지만 정이 있는 사람들,부패공무원,미디어의 과장 보도 등을 가감없이 그려낸다.

PIFF에선 이처럼 다른 데선 보기 힘든 영화가 상영된다.올해 상영작은 상업·독립 영화를 합쳐 64개국 275편.다양한 작품들은 순식간에 건물을 폭파하고 차를 불태우고 인명을 살상하는가 하면 온갖 화려함과 사치로 도배한 할리우드 영화에 물든 우리에게 그렇지 않은 세상의 존재를 알려준다.

구차하고 보잘 것 없는 삶도 중요하고 싸우고 틀어져도 혈육간 사랑은 끈끈하며 진실의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는,진부한 듯 소중한 예술 본연의 메시지도 전하려 애쓴다.

PIFF는 이렇게 영화가 단순한 수익용 상품이 아니라 사람들끼리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도구임을 일깨운다.

영화제 기간 동안 부산은 온통 잔칫집이다.

PIFF광장이 있는 해운대 및 남포동 극장가는 전국 각지와 일본·중국 등에서 몰려든 영화팬으로 넘친다.단 개막식날 쏟아지는 비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일이나 부대행사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점 등은 보다 철저한 사후대책이 필요한 대목임에 틀림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