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경제학상 수상자 특별강연] 남종현 고려대 교수 "비용 따지는 정책 펼쳐야 선진국 진입"

[다산경제학상 수상자 특별강연] 남종현 고려대 교수 "경제도 人事… 비용 따지는 정책 펼쳐야"
제26회 다산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남종현 고려대 교수는 대표적인 국제무역 전문가다.

특히 1980년대부터 선진국의 신보호주의 위협을 깊이 인식하고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체제 아래에서 국가 간 무역분쟁의 원인 규명과 해결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나라 산업 및 무역 정책 합리화에 크게 기여했다.남 교수는 "우리나라가 미국,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완료하면 세계의 50% 이상과 자유무역을 실현하는 효과를 누린다"며 "대외개방을 통해 크게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부문은 농업과 서비스 분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무역 효과에 대해서는 "대외개방을 통한 무역 확대가 개발도상국에는 엄청난 고용 효과를 유발하지만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며 "우리나라도 수출구조가 자본 및 기술집약적 상품 중심으로 전환된 반면 수입구조는 노동집약적 상품 쪽으로 전환돼 무역 확대가 고용 증가보다는 감소로 이어지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음은 12일 한국경제신문 본사 다산홀에서 열리는 다산경제학상 수상 직후 있을 예정인 남 교수의 특별 강연 내용.한국의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한번 꼭 받아보고 싶은 영예로운 상,하지만 나한테는 전혀 인연이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상,그런 다산경제학상을 오늘 수상하게 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1977년 미국에서 교직생활을 하던 중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귀국했을 때 한국 경제는 역사상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를 넘었고 또 수출도 100억달러를 초과했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의 정책 환경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만성적인 재정적자,20%에 육박하는 높은 인플레이션,마이너스인 실질금리,그리고 달러당 484원에 고정돼 고평가된 환율 등 거시정책은 정상궤도를 이탈한 상태였다.

또 산업 및 무역정책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중화학공업은 개별산업육성법에 의해 과도하게 추진되고 있었고 수입 대체산업은 높은 무역보호 아래에 있었으며,수출산업은 강력한 금융 및 세제 지원에 의해서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를 통해서 국내총생산(GDP)의 실질 성장률이 연평균 7%를 상회한 것은 정부가 강력한 투자 지원 정책과 수출 확대를 위한 지원 정책을 병행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재정상태 악화와 금융산업 부실화로 그마저도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웠다.

KDI에 근무할 당시 주로 산업 및 무역 정책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 정책이 엉망일수록 할 일도 많았다.

지나치게 난립한 형태로 운용되고 있던 산업 및 무역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선 그러한 비효율적인 정책들 때문에 국가경제가 치러야 하는 경제적 비용이 무엇인지를 계산해 보여줌으로써 정책 변경을 유도하려고 노력했다.

한편,정책 변경이 어려운 단기적 상황 아래에서라도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과 더불어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던 정부 재정 투·융자 사업들이 부실화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예산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재정 지원 투자 사업들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하는 기법들을 개발해 활용하기도 했다.

다행히 1980년대에 들어와 한국 경제는 많은 부문에서 개선이 이뤄졌다.

우선 재정,금융,환율 등 거의 모든 주요 변수들이 정상화했고 그 결과 거시경제가 안정됐다.

또 과감한 대외개방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 일환으로 1983년에 '관세율 개편 5개년 계획'도 수립됐고 나도 여기에 참가했다.

이어 1988년에 '제2차 관세율 개편 5개년 계획'에는 공동 민간대표로 참여해 우리나라의 선진 관세제도를 도입하는 데 나름대로 도움을 줬다고 자부한다.

1980년대 초에 KDI에서 오랫동안 한국 경제 문제를 다뤘던 경제학자들이 정부의 고위 관리로 들어간 결과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고 느낀다.

'경제도 역시 인사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1980년대 중반 세계은행(IBRD) 연구부서에 새로 신설된 무역정책과에서 근무한 2년 동안은 크게 두 가지 일을 수행했다.

하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차원에서의 국제 무역규범이나 규정에 대한 연구였고 또 하나는 미국의 무역정책에 대한 것이었다.

주로 선·후진국 간에 발생하는 무역 마찰의 원인을 분석하고 제도적 개선책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1977년에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소로부터 초청받아 연구할 때는 무역과 경제성장의 인과관계를 규명해 나가는 연구를 했다.

그 결과는 최근 몇 개의 논문으로 발표됐고 이 연구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들 연구에서는 무역활동이 가져다 주는 효과 중 자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과 고용 파급 효과 등을 연구하기도 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1975년 우리나라에서 10억원어치의 수출과 10억원어치의 수입을 증가시켰을 경우 약 65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어냈지만 2000년의 경우에는 약 1.3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그치고 있다.

이는 그동안 한국의 수출구조가 점차 자본 및 기술집약적 상품 중심으로 전환된 반면 수입구조는 노동집약적 상품 쪽으로 빠르게 전환돼 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졌다고 가정하면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무역 확대가 국내 고용 증가보다는 고용 감소에 기여하는 선진국형 무역구조로 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 한국의 대외무역정책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에서의 다자간 협상 중심에서 지역적 특혜무역 중심 협상으로 급격히 선회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EU와 같은 거대한 경제권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긴 안목에서 볼 때 WTO 체제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도하라운드(DDA)와 같은 다자간 협상이 표류하고 있는 한 그러한 추세는 약화할 것 같지 않고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는 올해 봄 미국과의 FTA를 매듭짓고 현재 양국의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EU와의 FTA도 서두르고 있다.

만약 이들 경제권과 FTA가 실현된다면 한국은 세계의 50% 이상과 자유무역을 실현하는 효과를 누린다.

또 향후 대외개방을 통해서 크게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부문은 농업과 서비스 분야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우리 세대에 한국 경제가 선진국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정치와 정부 관료 제도가 선진화돼야 하고 또 교육이 선진화해야 한다.

한국의 GDP 대비 교육 및 연구개발(R&D) 지출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앞서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최소한의 기초는 이미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다산경제학상도 한국 경제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데 크게 한몫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리=정재형 기자/사진=허문찬 기자 jjh@hankyung.com

◆약력

△1943년 대전 출생 △1967년 서울대 자원공학과 졸업 △1975년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1975~1977년 미국 서던 일리노이대학 초빙 조교수 △1977~1981년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 △1985~1987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1997~1998년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2001~2003년 고려대 정책대학원 원장 △1981~현재 고려대 정경대 경제학과 교수◆저서

△철강공업의 특성과 수급 구조(1978년,한국개발연구원) △우루과이라운드의 규율 분야 협상과 산업·무역정책의 개선 방안(1992년,한국개발연구원) △APEC지역에서의 자본 이동성 변화와 한국경제(1996년,한국금융연구원) △국제무역론(제3판,2003년,경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