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문인수 '최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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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것은 어느 순간 죽는 자의 몫이겠다.
그 누구도,하느님도 따로 한 봉지 챙겨 온전히 갖지 못한 하루가 갔다.
꽃이 피거나 말거나,시들거나 말거나
또 하루가 갔다.한 삽 한 삽 퍼 던져
이제 막 무덤을 다 지은 흙처럼
새 길게 날아가 찍은 겨자씨만한 소실점,서쪽을 찌르며 까무룩 묻혀버린 허공처럼
하루가 갔다.
그러고 보니 참 송곳 끝 같은 이 느낌,눈에 안 보일 정도로 첨예하다.
저 어둠을 뚫고 또 어디, 싹트는 미물이 있겠다.
-문인수 '최첨단'전문
지독히 슬프고 허무한 느낌을 주는 시다.
탄생과 사멸의 불가해한 흐름속에 놓여 있는 하루하루. 우리가 무엇을 바라든,무엇을 피하려 하든 아무 상관없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어느날 버젓이 생기곤 한다.
꽃이 피거나 말거나, 시들거나 말거나 하루가 가는 것이다.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이 생겼으면 '하느님조차 온전히 갖지 못한 하루'라고 썼을까.
그래도 어디에선가 미물이 싹트고,우리는 살아가야 한다.어쩔 수 없는 삶의 비극이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