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선물과 뇌물

대쪽같다는 차관 집에서 식구들이 선물상자를 푼다. 차관은 물건을 보고 받을 것과 돌려줄 것을 나눈다.

추석 무렵 방송된 KBS 1TV 일일극 '미우나 고우나'의 한 장면이다.안받을 건 애당초 거절하고,모르고 받았어도 뜯으면 반품하기 곤란하니 그대로 돌려보내야 할 것 같은데 사정은 달랐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의 송별연에서 백수 선배를 자처한 이가 얇고 가벼운 시계를 선물했다.

백수로 지내자면 산에도 가고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몸이 가뿐해야 한다는 것이다.주위에 보면 가진 게 많은데도 불행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은퇴 뒤엔 무엇보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거나 만나자는 사람이 줄어도 상처받지 말라는 말도 곁들였다.

앞의 것은 허구,뒤의 것은 사실이다.전혀 다른 얘기같지만 들여다 보면 그렇지도 않다.

둘 다 선물과 관련된 데다 '자리'와 '대우'의 관계를 전하는 까닭이다.

뒤쪽의 시계는 확실한 선물이지만,앞쪽의 상자에서 선물과 뇌물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다.깨끗한 정치,투명한 경영의 중요성이 그토록 강조되는데도 현실은 영 기대에 못미치는 걸까.

대한상공회의소가 '윤리경영 딜레마,사례와 해법' 보고서에서 선물과 뇌물의 판별 척도로 밤에 잠이 잘 오는지,언론에 보도됐을 때 문제가 될 것 같은지,보직을 옮기면 줄어들 듯한지 등을 제시했다.

궁여지책이다 싶지만 이 또한 크게 유효할 것 같진 않다.

뭐든 일단 받고 나면 돌려주기 힘들고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내용물의 종류와 크기에 무뎌질 수도 있다.

처음엔 작은 것에도 잠을 못이루지만 점차 무신경해져 웬만큼 큰 것도 선물이려니 하고 '누가 준 건데''이 정도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선물인 줄 알았던 게 뇌물인 경우 끔찍한 재앙으로 돌변하는 일은 흔하다.

신정아씨를 뜻밖의 '선물'이라고 여겼던 이들이 지금 겪고 있는 일이나 현직 국세청장이 검찰에 소환되게 된 것만 봐도 그렇다.

선물과 뇌물을 구분하려 애쓸 것 없다.보통사람에게 상식적이지 않은 건 누가 뭐래도 뇌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