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가격규제' 결국 철회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남용 행위 규제 강화 방안에 대한 규제개혁위원회의 철회 권고를 수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로써 공정위의 가격 규제안 입법예고로 촉발된 100일간의 논란은 가격남용 관련 부분(5조1항)을 뺀 나머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만 30일 국무회의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공정위는 가격남용 규제 강화 방안에 대한 규개위의 철회 권고를 검토한 결과 이를 수용키로 결정하고,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고 28일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규개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또다시 비슷한 내용의 규제안을 발의해봐야 실익이 없는 데다 나머지 시행령 개정안의 입법 절차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5조1항 개정안을 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규개위는 공정위가 심의를 요청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중 가격 남용 요건을 늘리는 부분에 대해 철회를 권고하고 나머지 내용만 통과시킨 바 있다.정부가 입법하는 규제 관련 법령은 규개위의 심의를 통과하지 않으면 국무회의에 상정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공정위는 그동안 시행령에 가격 남용이 될 수 있는 요건을 추가해 독과점 기업의 가격 결정에 대해 폭넓게 개입할 근거를 확보하려 했다.

현행 법령으로는 원료값의 변동 등에 비해 과도하게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지 않는 행위만 가격 남용으로 처벌받았지만,공정위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가격을 비슷한 업종의 수준과 비교해 높다면 곧바로 제재를 가할 수 있게 할 예정이었다.하지만 이에 대해 재계와 경제학계는 "직접적인 가격규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에 반하고 세계적인 경쟁법 운용 방향과 한국의 규제완화 추세를 모두 거스르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고,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등 정부 내 경제 관련 부처들도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다.

특히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성명서를 통해 "가격이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점을 간과하고 공급 요인에 의존해 가격 규제를 실시하려는 것은 1970년대식 물가관리정책"이라며 "가격 수준을 문제 삼는다면 기업의 창의적 활동과 경제의 효율성에 치명타를 입힐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규개위 심의 과정에서 민간 위원들의 광범위한 공감을 얻었고 끝내 공정위의 가격 규제 방침은 철회 권고를 받았다.공정위 관계자는 "독과점에 대한 규제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규개위원들의 이해를 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의 규제는 한번 만들어지면 좀처럼 없애기 어렵다"며 "따라서 이번처럼 합리적 근거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도입되는 규제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사전적 감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