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피' 탑재 의무화가 부른 로열티 복병 … 이통사 年 수백억 로열티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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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우리나라 통신업체들에 '로열티 복병'으로 등장했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을 이용하는 대가로 미국 퀄컴에 해마다 수천억원의 로열티를 지불하는 상황에서 썬에도 자바 기술 사용료로 수백억원대의 로열티를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썬의 자바 로열티는 금액면에서 퀄컴 로열티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퀄컴이 2ㆍ3세대 이동통신 특허에 대한 대가로 휴대폰 제조사들로부터 판매가격의 5%(30만원짜리 휴대폰은 1만5000원)가량을 로열티로 받는다면 썬은 휴대폰 1대당 200~400원의 로열티를 받을 뿐이다.
하지만 독점력 관점에서는 썬의 자바 문제가 오히려 심각하다.우리 휴대폰 제조사들이 엄청난 로열티를 퀄컴에 지불하지만 칩세트 선택권을 갖고 있다.
반면 자바는 우리 업체에 선택권이 없다.
정부가 표준을 강조하면서 모든 휴대폰에 위피 플랫폼을 탑재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이다.금액이 작다고 결코 만만히 볼 이슈가 아니다.
선택권이 없다 보니 우리 업체들은 썬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앞으로 썬이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해도 딱히 피할 방법이 없는 게 자바 로열티의 근본 문제다.자바 로열티가 향후 얼마나 커질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정보통신부는 2001년 휴대폰 칩세트를 독점한 퀄컴이 플랫폼까지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위피 표준화에 나섰다.
이통 3사가 같은 플랫폼을 도입,무선인터넷 콘텐츠의 호환성을 높이자는 취지도 있었다.
하지만 표준에 썬의 자바를 넣으면서 또 다른 독점을 야기시켰다.
세계적으로 휴대폰과 관련해 표준 기술 사용을 의무화한 나라는 드물다.
표준을 만들어도 채택 여부는 사업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일반적이다.
국산 플랫폼을 강조하던 정부 정책이 도리어 우리 통신업체들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업계에서는 위피 도입을 사업자 자율에 맡기거나 썬의 자바만이라도 필수 규격에서 제외하는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썬과의 계약 방식도 시급히 수정해야 할 문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이 이동통신사가 썬과 직접 계약한다.
보다폰,텔레포니카,T모바일 등 해외 이통사들도 자바 기술을 많이 사용하지만 직접 썬과 계약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기술을 제시하면 휴대폰 제조사들이 썬과 계약해 휴대폰을 개발한다.
로열티도 제조사가 썬에 지불한다.
글로벌 휴대폰 제조사들은 연간 수억대의 휴대폰을 생산하기 때문에 협상력이 높아 썬에 내는 로열티를 줄일 수 있다.
반면 우리 이통사의 경우 최대 이통사인 SK텔레콤도 연간 휴대폰 판매대수가 1000만대 남짓이라 제조사에 비해 협상력이 크게 떨어진다.
휴대폰 1대당 로열티도 제조사들이 내는 금액의 2배 수준이다.
자바를 무선인터넷 국가 표준으로 정하고 모든 휴대폰에 탑재하도록 의무화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런데도 썬은 오히려 국내 이동통신사로부터 더 많은 로열티를 받아간다.
계약 방식도 가장 후진적이다.
업계에서 '한국은 썬의 봉'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SK텔레콤 관계자는 "이동통신사가 썬과 직접 로열티 협상을 벌이는 모순이 국내에서만 반복되고 있다"며 "국부 유출을 줄이기 위해 제조사가 썬과 계약하고 이통사가 이를 나중에 정산하는 방식 등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