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면법인 몸값 수억원 … 거래 사이트 활개

등기만 돼 있고 영업활동이 전혀 없는 이른바 '휴면법인'을 악용한 탈세,주가 조작,사기 등 불법 사례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휴면법인을 거래하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등장,휴면기업이 불법에 노출되도록 부추기고 있다.업계 전문가들은 "휴면기업 거래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휴면기업이 아무런 제재 없이 거래될 경우 불법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휴면법인을 방치할 경우 각종 '거품' 통계를 양산해 경제 현황을 왜곡할 수 있고 국내 기업의 대외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휴면법인 거래 사이트까지 등장휴면법인을 사고파는 인터넷 사이트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들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업 M&A(인수.합병) 시장에서 휴면법인의 몸값은 수억원에 달할 정도였다"며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거래 사이트들도 속속 생겨났다"고 말했다.

휴면법인이 이처럼 인터넷 사이트에서 활발하게 거래된 것은 지난 수년 동안 영업이 이뤄지지 않아 매출 누락이나 부실 채무 등 장부상 허위 기재의 문제가 없는 '깨끗한' 회사로 활용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특히 과거 공사실적 등이 입찰을 따내는 데 주요 변수로 작용하는 건설법인의 인기는 꽤 높은 편이다.

건설 프로젝트 입찰의 경우 실적이 전무한 신생 기업보다 휴면법인이더라도 '휴면 상태'로 들어가기 전 공사 실적이 있으면 입찰에 유리하다.

그러나 최근 법원이 휴면법인을 이용한 기업들의 세금 회피에 대해 엇갈린 판결을 내리면서 이들 거래 사이트들의 움직임도 약간 주춤하고 있긴 하다.서울행정법원은 지난 4월10일 론스타가 휴면법인을 이용해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를 매입한 데 대해 "강남구청이 252억원을 중과세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휴면법인을 이용한 세금 회피를 정당한 것으로 판결했다.

하지만 불과 보름 뒤인 4월26일 동일한 수법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중과세한 양천구청의 손을 들어줘 엇갈린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때문에 시장 관계자들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서초동 법원가에서 휴면법인 거래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 중인 박모씨는 "휴면법인 거래를 노리고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 기다리고 있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휴면법인을 이용한 세금 회피가 정당하다는 최종 판단을 내릴 경우 휴면법인의 거래가 크게 늘고 이에 따른 부작용도 크게 불거질 수 있다.

◆기업 대외 이미지도 손상

휴면법인은 완전히 죽은 기업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살아 있는 기업이라고 할 수 없는 '어정쩡한' 기업이다.

그런데도 휴면법인에 대한 금융회사의 대출은 미수채권으로 잡힌다.

통계에 거품이 끼는 왜곡 현상이 불가피해진다는 뜻이다.

휴면법인 방치 관행은 국내 기업의 대외적 이미지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기업 파산 전문가 임치용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얼마 전 미국 현지에서 변호사를 고용했다.

홍콩에 투자하려는 한 국내 업체의 과거 미국 투자 행태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철수할 때 법적 청산 절차를 제대로 거쳤는지 여부 등을 홍콩 정부가 따져 물어왔기 때문이다.

임 변호사는 "예컨대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접고 워싱턴에 투자하려고 해도 미국 주정부는 투자 허가에 앞서 이전 캘리포니아 사업을 제대로 정리했는지 반드시 체크한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따라서 이렇게 버려지는 회사들을 법적인 청산 절차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세제상의 혜택 등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김병일/박민제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