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치과잉'에서 벗어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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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咸仁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19세기 초 템즈 강에 빠진 선원들은 익사했던 것이 아니라 전선 하수구의 악취와 독가스로 인해 질식사했다고 한다.중세도시의 좁은 거리를 지나노라면 마치 코를 두들겨 맞으며 걷는 것과 같았다 한다.
도로 위든 마차 속이든 배설물이 쌓여 있었기에.심지어 파리 곳곳에선 소변으로 인해 가옥 외관이 썩어가고 있었다고도 한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명저(名著) '위험사회'에 나오는 구절이다.벡에 따르면,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끊임없이 위험과 재난에 노출돼 왔기에 굳이 '위험'을 현대사회만의 특성이라 주장할 순 없다고 본다.
단 오늘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위험'은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온 '위험'과는 본질적 특성을 달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실제로 오늘날 위험을 야기하는 요소들은 핵 위협이든,환경 호르몬이든,동물 복제든 즉각적 인지가 불투명함은 물론 그 여파가 세대를 뛰어 넘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요,종래 위험의 여파가 일정 지역에 한정되는데 그쳤다면,오늘날의 위험은 전 지구적으로 일파만파 번지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라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과거의 위해(危害)는 저급한 수준의 의료 및 위생시설과 낮은 생산력으로 인한 빈곤이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었다면, 오늘날 위험은 과잉생산 및 과잉소비로부터 파생되고 있음도 주목할 만한 차이요,위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위험의 정체성'이 바로 전문가들의 권위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이라 본다.
한데 우리사회를 진정 위험으로 몰아가는 요소는 특유의 '정치 과잉'에 압도되어 곳곳에서 울리는 일상적 반란의 경고음이 의당 받아야 할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인 듯하다.
최근 대중매체를 장식했던 크고 작은 반란들만 열거해 보아도,사교육비 지출 및 조기유학 급증,대입 이혼(자녀가 대학에 들어간 후 이혼하는) 증가, 신(新)고려장이라 불리는 부양 위기,주식 시장 과열,사이버 범죄 급증,40대 남성 사망률 세계 1위 등 리스트가 만만치 않다.물론 출산처럼 극히 개인적 선택으로 여겨지는 행위조차 보육 및 교육정책의 직접적 영향 하에 놓이는 것이 현대사회의 특성이요,이혼처럼 순전히 개인의 불행으로 여겨지는 사건 속에도 경제불황 및 재산분할청구권의 여파가 숨어있는 것이 현대사회의 이면이기에 정치 과잉 자체를 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보다는 무엇을 향한 정치적 관심이냐가 관건이란 생각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도 예외 없이 우리네 관심은 정치권의 이골 난 부정부패,선거철이면 반복되는 창당 탈당 재입당의 파노라마,실세를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온 건 아닐는지. 이제 이회창 후보까지 가세된 마당에 향후 전개될 정치 드라마의 각본을 예측하는데 열을 올리느라,정치적 관심의 핵심이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연계되는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지 못한 채 후진성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와중에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고 이미지의 파급효과에 의존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의 위험도 또한 만만치 않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과잉 정치 하에선 '올바른 정책' 수립에 주력하기보다 '인기 위주의 정책'에 연연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레지던트십'은 국민의 인기도와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음을 기억할 일이다.물론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정치력 또한 훌륭했던 대통령이 역사상 전무했던 건 아니지만,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기인 부럽지 않은 찬사를 받긴 했어도 정치적 역량은 형편없었거나,탁월한 정치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반감을 샀던 대통령이 더욱 많았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
정치과잉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길,그건 "정치란 그저 국민들 잘 살게 해주는 것"이란 소박함을 회복하는 길이 아니겠는지.
"19세기 초 템즈 강에 빠진 선원들은 익사했던 것이 아니라 전선 하수구의 악취와 독가스로 인해 질식사했다고 한다.중세도시의 좁은 거리를 지나노라면 마치 코를 두들겨 맞으며 걷는 것과 같았다 한다.
도로 위든 마차 속이든 배설물이 쌓여 있었기에.심지어 파리 곳곳에선 소변으로 인해 가옥 외관이 썩어가고 있었다고도 한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명저(名著) '위험사회'에 나오는 구절이다.벡에 따르면,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끊임없이 위험과 재난에 노출돼 왔기에 굳이 '위험'을 현대사회만의 특성이라 주장할 순 없다고 본다.
단 오늘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위험'은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온 '위험'과는 본질적 특성을 달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실제로 오늘날 위험을 야기하는 요소들은 핵 위협이든,환경 호르몬이든,동물 복제든 즉각적 인지가 불투명함은 물론 그 여파가 세대를 뛰어 넘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요,종래 위험의 여파가 일정 지역에 한정되는데 그쳤다면,오늘날의 위험은 전 지구적으로 일파만파 번지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라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과거의 위해(危害)는 저급한 수준의 의료 및 위생시설과 낮은 생산력으로 인한 빈곤이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었다면, 오늘날 위험은 과잉생산 및 과잉소비로부터 파생되고 있음도 주목할 만한 차이요,위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위험의 정체성'이 바로 전문가들의 권위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이라 본다.
한데 우리사회를 진정 위험으로 몰아가는 요소는 특유의 '정치 과잉'에 압도되어 곳곳에서 울리는 일상적 반란의 경고음이 의당 받아야 할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인 듯하다.
최근 대중매체를 장식했던 크고 작은 반란들만 열거해 보아도,사교육비 지출 및 조기유학 급증,대입 이혼(자녀가 대학에 들어간 후 이혼하는) 증가, 신(新)고려장이라 불리는 부양 위기,주식 시장 과열,사이버 범죄 급증,40대 남성 사망률 세계 1위 등 리스트가 만만치 않다.물론 출산처럼 극히 개인적 선택으로 여겨지는 행위조차 보육 및 교육정책의 직접적 영향 하에 놓이는 것이 현대사회의 특성이요,이혼처럼 순전히 개인의 불행으로 여겨지는 사건 속에도 경제불황 및 재산분할청구권의 여파가 숨어있는 것이 현대사회의 이면이기에 정치 과잉 자체를 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보다는 무엇을 향한 정치적 관심이냐가 관건이란 생각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도 예외 없이 우리네 관심은 정치권의 이골 난 부정부패,선거철이면 반복되는 창당 탈당 재입당의 파노라마,실세를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온 건 아닐는지. 이제 이회창 후보까지 가세된 마당에 향후 전개될 정치 드라마의 각본을 예측하는데 열을 올리느라,정치적 관심의 핵심이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연계되는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지 못한 채 후진성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와중에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고 이미지의 파급효과에 의존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의 위험도 또한 만만치 않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과잉 정치 하에선 '올바른 정책' 수립에 주력하기보다 '인기 위주의 정책'에 연연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레지던트십'은 국민의 인기도와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음을 기억할 일이다.물론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정치력 또한 훌륭했던 대통령이 역사상 전무했던 건 아니지만,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기인 부럽지 않은 찬사를 받긴 했어도 정치적 역량은 형편없었거나,탁월한 정치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반감을 샀던 대통령이 더욱 많았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
정치과잉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길,그건 "정치란 그저 국민들 잘 살게 해주는 것"이란 소박함을 회복하는 길이 아니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