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맨해튼의 '환율전쟁'

일요일인 지난 11일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광장.이면 도로 한 편에 대형 관광버스 3대가 서더니만 100여명의 관광객을 쏟아놓는다.

버스에 붙어 있는 표시는 '바이킹 여행사'.다름아닌 유럽에서 온 단체 관광객이다.이런 모습은 이전에도 흔했다.

타임스퀘어 광장은 뉴욕 관광의 중심지다.

주변에 뮤지컬 극장들까지 몰려 있어 언제나 발디딜 틈 없이 혼잡한 거리다.이전과 다른 점은 유럽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대형 버스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점.어림잡아 유럽 관광객들이 1.5배가량 늘어난 것 같다는 게 주변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한 교민의 얘기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캐나다 관광객이다.

요즘 들어 특히 북적거리는 게 캐나다 사람들이다.다름아닌 환율 때문이다.

연초만 해도 캐나다달러는 미국달러당 1.17달러를 웃돌았다.

지금은 미국달러당 0.95캐나다달러.캐나다달러 값이 미국달러 값보다 비싸진 셈이다.그러다 보니 부담 없이 미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국경 지역에는 단지 물건을 사거나 기름을 넣으러 미국으로 건너오는 캐나다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최근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경기 둔화에 허덕이는 미국에 유럽 등의 관광객은 고마운 존재다.

최근엔 이들이 미국 주택까지 대거 구입하고 있어 빈사 상태인 주택 경기의 숨통을 터 주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9월 무역 적자가 2년4개월 만에 가장 적어진 것도 달러화 약세 덕분이다.

물론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작년 취임 초부터 최근까지 줄곧 달러화 강세 정책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그가 취임한 16개월 동안 달러화 가치는 9.5% 하락했다.

지난달 20일 열린 G7(선진 7개국) 재무장관 회담에서도 유럽 국가들이 달러화 약세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으나 정작 발표된 합의문에 달러화 얘기는 없었다.

이쯤 되니 미 정부가 강한 달러화 정책을 되뇌면서도 달러화 약세를 즐기고 있다는 말은 정설이 돼 버렸다.맨해튼의 관광객들은 주요 국가들이 왜 '환율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인 것 같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