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노조 굴복시킨 佛 사르코지의 리더십

열흘 동안 프랑스 전국을 마비시켰던 공공교통 부문이 23일 운행을 재개했다.

공기업의 특별연금을 개혁하겠다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원칙과 이를 지지하는 국민의 여론 앞에 강성 노조가 무릎을 꿇은 사건이었다.'혁명은 있지만 개혁은 없다'던 프랑스가 개혁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처와 같은 '원칙',다른 '융통성'

이번 파업으로 철도 지하철 버스 등 대부분의 대중교통이 멈춰섰다.피해액만 해도 하루 4억유로(약 5500억원).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은 타협보다는 원칙을 택했다.

그는 파업이 일주일째 접어들며 극심한 혼란을 빚을 때도 "우리는 굴복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라며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사르코지는 파업이 사실상 끝난 23일 "양보해서는 안 될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며 "그것을 지켰고 앞으로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단호한 태도 때문에 광산노조의 총파업을 굴복시킨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에 비유되며 '프랑스의 대처'란 별명을 얻었다.하지만 그는 대처와는 다른 융통성을 보였다.

공기업 근로자의 연금납입기간을 37.5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하는 공기업 특별연금 개혁의 골격을 지키면서도 임금과 연금 인상을 비롯한 다른 보상책을 제시,퇴로를 열어줬다.

◆파업을 이긴 파리지앙의 힘노조를 굴복시킨 것은 프랑스 국민들의 힘이었다.

파업 9일째인 지난 22일 파리의 생 파자르 전철역.오전 4시의 이른 시간임에도 플랫폼은 출근을 위해 몰려든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띄엄 띄엄 다니는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잠을 포기한 시민들이었다.

오전 6시 샹젤리제 거리도 자전거나 도보,심지어 롤러블레이드로 출근하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콩나물 시루 같은 열차에 몸을 맡기거나 자전거로 출근하는 시민들은 개혁을 밀어붙이는 사르코지 대통령을 탓하지 않았다.

대신 노조의 파업에 불만을 터뜨렸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파업을 벌인 노조에 대해 '말없는 다수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시민들의 보기 드문 파업반대 시위도 벌어졌다.도심 레퓌블리크 광장에선 파업 노조원들의 복귀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피켓 시위가 대규모로 열리기도 했다.

르피가로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9%가 '정부가 물러서선 안 된다"며 사르코지의 개혁 의지에 힘을 실어줬다.

이 같은 여론은 사르코지가 '후퇴없는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도록 한 힘의 원천이자, 노조를 협상테이블에 끌어앉힌 압박으로 작용했다.

◆"파업은 유보됐을 뿐이다"

공기업 특별연금 개혁을 둘러싼 노ㆍ정 대결에서 사르코지가 승기를 잡음에 따라 고질적인 프랑스병을 수술하겠다는 그의 결단이 첫 시험대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한달간 진행되는 노ㆍ사ㆍ정 3자 협상에서 임금 및 연금 인상안 등을 논의한다.

노조는 "파업을 유보했을 뿐,협상이 불만족스러우면 12월에 다시 파업을 벌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파업이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노동계 파업은 수그러들었지만 대학자치법에 반발하는 학생들의 시위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더욱이 사르코지의 다음 개혁대상인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는 이번 공기업 특별연금 개혁보다 더 큰 반발을 예고하고 있어 '산넘어 산'이란 평가다.사르코지는 제2,3의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첫 관문격인 공기업 특별연금 개혁에서 원칙을 양보하지 않은 것이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