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슬로건

우리나라 선거 슬로건 중에서 백미를 꼽으라면 아마도 '못살겠다,갈아보자'일 것이다.

1956년 제 3대 대통령선거에서,자유당의 이승만 대통령에 맞선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가 내건 구호였다.독재와 민생고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가슴에 이 구호는 더할 나위없는 청량제와 같은 것이었다.

그 후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시대상황에 걸맞은 각종 슬로건들이 나왔다.

'대중시대의 막을 열자''창조·개혁·발전의 새 영도자''위대한 보통 사람''민주화의 승부사' 등이 그것이다.지역주의가 판을 치고 '민주와 반민주'의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선거가 이어졌지만 구호가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못할 정도였다.

이번 대통령 선거 역시 표심을 잡기 위한 슬로건 경쟁이 치열하다.

후보마다 자신의 이미지와 비전을 각인시킬 수 있는 한 줄의 슬로건에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다.'가족행복시대''국민성공시대''반듯한 대한민국''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등으로 유권자들의 '필'을 자극하고 있다.

슬로건(slogan)이란 용어는 스코틀랜드어(sluagh-ghairm)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쟁 중 외침'이란 뜻이었다고 한다.

명예를 걸고 맹렬히 싸우도록 독려하는 말인데,이것이 선거라는 전쟁에서는 대중의 행동을 조종하기 위한 문구로 사용되고 있다.슬로건은 선진국 선거에서 더욱 위력적이라고 한다.

정강정책이 뚜렷하고 이념의 색깔이 분명할수록 슬로건의 이미지가 선명해서다.

1992년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이 멍청아,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Stupid)'라는 이 짧은 메시지 하나로 단박에 전세를 뒤집어 놓은 사건은 유명하다.

사실 슬로건의 성공여부를 미리 점치기는 어렵다.

이긴 후보의 슬로건이 으레 성공작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따뜻한 감성에 호소하고,'미래'나 '새로움''변화'를 상징하는 슬로건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우리 대통령 후보들의 슬로건은 과연 어떻게 평가될지 선거 후가 궁금해진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