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시니카' 세계경제를 바꾼다] 2부-(2) 1억6천만 '新럭셔리군단' 명품시장 누빈다


2부=차이나 사슬의 파괴력 (2) 열리는 대륙의 지갑

상하이 번화가인 난징시루의 주광백화점.버버리 크리스찬디올 등 명품 코너가 자리잡은 1층에 휴대폰 매장이 있다.노키아의 베르투 매장이다.

4만6000위안(약 552만원)의 가격표가 눈길을 끈다.

그 옆에 놓여 있는 휴대폰용 가죽케이스는 5300위안(63만6000원)에 팔리고 있다.찾는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같은 층에 있는 LG생활건강의 '후' 화장품 코너엔 40대 초반의 여성 3명이 6800위안(81만6000원)짜리 한방 영양크림 '환유고'를 놓고 점원과 상담을 하고 있다.

환유고는 수입 관세 등의 이유로 한국보다 20% 정도 비싸게 팔리지만 한 달에 15개 정도가 나간다는 게 점원의 귀띔이다.환유고가 한국 내 60여개 '후' 매장에서 월 평균 5~6개 팔리는 것보다 2배 이상 팔리는 셈이다.

대졸 초임이 월 3000위안(36만원) 정도인 중국에서 이 같은 소비가 어떻게 가능할까.사회과학원 통계를 보면 수긍이 간다. 명품을 살 수 있는 중국 인구가 전체 13억명의 13%인 1억6000만명에 달한다.게다가 럭셔리 소비층이 40~70세의 중노년층인 외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20~40세의 소수 부유층과 외국 기업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 및 민영 기업 대표 등이 주요 소비계층이다.

이들 가운데 금융자산이 100만달러가 넘는 자산가만 30만명이 넘는다(메릴린치 보고서).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200달러로 세계 100위권 밖에 있지만 백만장자(금융자산 기준)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나라가 중국이다.소비를 떠받치는 힘은 급등세를 보인 주식과 부동산에서 나온다.

중국 최고의 갑부인 양후이옌(25)은 부동산개발 업체인 비구이위안 창업자의 딸이다.

아버지한테 주식을 물려받은 양씨는 지난해 4월 이 회사가 홍콩 증시에 상장하면서 692억 홍콩달러(8조3000억원)의 부호로 부상했다.

상하이에 있는 외국계 보험사에 다니는 왕천씨는 주식과 부동산으로 부를 일군 대표적인 사례다.

아우디를 몰고 다니는 왕씨는 2005년 부동산 진정 대책이 나오자 아파트 한 채만 남기고 두 채를 팔았다.

매각 대금은 증시에 투자했다.

이후 주가 급등으로 10배 이상을 벌었다.올 들어 주식 고평가 우려가 커지자 다시 부동산으로 갈아탔다.

지난 3월 푸둥에 있는 스지공원 옆 아파트(153㎡)를 198만9000위안(2억4000만원)에 샀고 그 아파트가 지금은 459만위안(5억5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퉁지대학 스젠쉰 교수는 "중국 10대 부호 중 8명,50대 부호 중 절반이 부동산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럭셔리 제품이 이들 최상위 부유층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월급을 모두 써버리는 웨광주(月光族),부모와 함께 살면서 명품 소비를 하는 팡라오주(傍老族),명품을 사기 위해 소득의 40% 이상을 쓰는 쿠거우주(苦購族ㆍ고통스럽게 구매하는 사람들)라는 말들이 생겨났다.

중국 남부 푸저우에 있는 한 백화점은 작년 11월에 하루 동안 다른 손님은 안 받고 VIP고객만을 받는 이벤트를 열어 9시간 만에 1000만위안(1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백화점 연간 매출의 6%에 해당하는 실적이다.

세계 최대 명품업체 루이비통의 4대 고객군에 중국인이 들어간 데서 중국의 높아진 구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을 몽블랑의 3대 소비국,구찌의 5대 시장,롤스로이스 3위 시장으로 떠오르게 한 것도 이들이다.

언스트 앤드 영은 "오는 2015년을 전후해 중국의 럭셔리 소비 인구는 2억5000만명으로 늘어 세계 럭셔리 시장의 29%를 차지,일본에 이어 2위 럭셔리 소비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에서 중국인들의 씀씀이도 커지고 있다.

"강한 위안화가 해외여행을 촉진시키고 있다"고 중국국제여행서비스의 린강 부주임은 말한다.

도쿄 아키하바라역 앞에 있는 한국계 면세점 영산의 니시야마 부사장은 "최근 1~2년 사이 중국 관광객이 늘어 주고객이 한국인에서 중국인으로 바뀌었다"며 "중국 고객 중엔 100만엔(900만원)어치 이상을 사는 사람도 있어 1인당 구매금액이 한국의 2~3배 수준"이라고 전했다.

중국인 여행객이 프랑스에서 쓰는 돈은 1인당 평균 3000달러로 미국인 여행객 1000달러의 세 배에 이른다.

중국인들의 해외 쇼핑 경비는 이미 2005년에 1인당 987달러를 기록,세계 1위를 기록했다.

쇼핑뿐 아니다.

지난해 두바이의 인공섬을 사고 독일의 한 공항을 인수하는 등 해외 부동산도 중국인의 소비력 영향권에 들어섰다.중국인의 두툼해진 지갑이 중국 개혁ㆍ개방 30년 동안 형성돼온 '중국=생산,미국=소비'라는 세계 경제의 기본질서를 바꿔 놓고 있다.


특별취재팀:베이징ㆍ톈진ㆍ다롄ㆍ상하이ㆍ광저우ㆍ선전ㆍ충칭ㆍ우루무치=조주현베이징특파원/최인한/오광진/장창민기자/김정욱기자(사진)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