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100도 돼야 수증기 되는데 98도만 되면 정부가 꼭 개입"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9일 "국내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금융 관련 규제를 풀겠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금융인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새 정부는 법을 바꿀 것은 바꾸고 규제를 없앨 것은 없애겠다는 적극적 자세를 갖고 있다"며 "한국 경제가 활기를 띠기 위해서는 금융산업이 선진화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해외 진출 관련 규제완화

금융사 대표들은 국내 금융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정부가 규제보다는 금융사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쪽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정부의 규제를 물의 비등점에 빗대어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물이 100도가 돼야 수증기가 만들어지는데 98도만 되면 정부가 들어온다.규제는 이 문제다"며 "(기업이)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정부는)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박해춘 우리은행장은 "우리은행이 러시아에 진출할 때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러시아 정부의 허가를 받는 데 1년6개월이 걸렸다"며 "우리나라는 그런 (인가) 절차가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된다"고 강조했다.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증권은 네거티브 방식(원칙적 허용,예외적 금지)의 규제가 되지만 은행과 보험은 여전히 포지티브 방식(원칙적 금지,예외적 허용)이라며 이 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보험사 대표들도 규제 완화나 제도 개선을 적극 주문했다.이수창 삼성생명 사장은 "보험사는 자기 투자 한도에 묶여 해외 투자에 한계가 있다"며 "해외 사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보험사 자산운용 기능이 강화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최근 논의되고 있는 금융감독 기능 통합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배호원 삼성증권 사장은 "지금은 감독기능과 금융기능이 재경부,금감위,금감원,공정위 등 여러 부처로 분산돼 있다"며 "이 창구를 단일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융소외자 지원방안도 제시

금융사 대표들은 이 당선인의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720만 금융소외자를 구제한다는 이 당선인의 정책과 관련,"신한은행은 현재 500만원 이하 채무자가 사회봉사활동을 하면 1시간당 3만원씩 원금을 감면해주고 있다"며 "그냥 신용회복을 시켜주면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이 당선인이 요청한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강정원 국민은행장은 "국민은행은 영업점 안에서 상품판매 조직과 입출금 및 유가증권을 다루는 부서를 완전히 분리해 1500명의 계약직 인력을 추가 고용할 수 있었다"며 "이처럼 영업점 업무를 분리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금융회사들이 아웃소싱을 할 수 있는 부분을 넓혀주면 아웃소싱 회사가 정규직을 많이 고용해 비정규직 문제와 고용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은행ㆍ증권ㆍ보험사 대표 15명이 참석했으며 이 당선인 측에서는 사공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 등 10명이 배석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