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기좋은 '세트메뉴' 막상 먹을게 없더라

이영주 < CFP인증자ㆍ한국재무설계 부산지점 팀장 >

동네를 지나다 보면 간혹 이런 문구가 눈에 띈다. "피자+통닭+콜라, 한 세트에 1만원"슬슬 허기가 지던 차에 1만원만 있으면 좋아하는 음식 3가지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으니 잘 됐다 싶어 전화로 주문해 본다. 그런데 막상 배달된 음식을 먹어 보면 실망하기 일쑤다. 피자는 피자 전문점에,통닭은 통닭 전문점에 가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금융상품에서도 이런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보험상품을 보면 "이 보험은 사망도 보장되고,질병이나 재해도 보장되고,죽거나 다치지 않으면 연금으로 전환할 수도 있고,긴급 자금이 필요하면 중간에 빼내 쓸 수도 있다"는 광고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정말 좋은 상품이다. 위험에 처했을 때 적절한 보장을 받고 별 일이 없다면 돈을 돌려받을 수도 있으니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보험이 정말 좋은 상품일까? 상품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피자-통닭세트와 같이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안 되는 보험료를 가지고 사망도 보장하고 질병이나 재해도 보장해야 하므로 질병사망 보장은 아주 미미하며,확률이 적은 재해사망만 크게 보장해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질병이나 상해보장은 지급 금액이 적거나 지급되는 사유를 제한해 놓기도 한다.

납입한 보험료가 대부분 사망,질병,재해 등 위험보험료로 쓰이고 나면 연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몫이 넉넉할 리 없다. 실제로 연금수령액은 연금으로 전환하는 시점(통상 55~60세)의 해약환급금에 따라 결정되는데,얼마 쌓여 있지도 않은 해약환급금을 가지고 연금으로 전환해 봤자 받게 될 연금수령액은 극히 미미하다. 오히려 연금 전환으로 인해 기존 보장이 해약돼 보장기능마저 상실할 우려도 있다.

중도에 돈을 빼내 쓰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인출할 금액이 얼마 안 되는데다 그마저 빼내 쓰다 보면 결국 보험의 효력이 정지돼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돼 버린다.이 모든 것이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뚜렷한 목적과 계획이 없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다.따라서 사망보장을 원하면 생명보험사의 종신보험 또는 정기보험에 가입하면 되고,질병이나 재해보장을 원하면 화재보험사의 치료비 보험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면 된다.연금을 원하면 연금저축,연금신탁,연금보험 등 연금 전문 상품을 선택해야 하고, 중도에 인출해 쓸 생각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수시입출금 통장이나 CMA계좌에 돈을 맡겨 놓는 것이 더 현명하다.

펀드 가입 또한 마찬가지다. 위험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은 주식형 펀드 등 위험 자산보다는 채권이나 원금보장형 예·적금 등의 안정적인 자산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경우에도 조금 더 안정적인 것을 찾으려고 주식과 채권이 혼합된 혼합형 펀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이 혼합형 펀드는 주식과 채권이 비슷하게 편입돼 있다 보니 문제점이 발생한다. 먼저 운용사 입장에서는 한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주식운용 담당부서와 채권운용 담당부서가 나눠서 관리하다 보니 운용상의 책임이 모호해진다. 뿐만 아니라 고객이 상황에 따라 투자 비중을 조정하려면 상품을 해약하고 다시 가입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혼합형 펀드에 1억원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금액을 나누어 5000만원은 주식 전문 펀드에 투자하고,5000만원은 채권 전문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금융상품은 가입 목적을 확실히 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모든 것이 가능한 상품으로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대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