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회장 "CIC 정신=쪼개야 산다"

'큰 것은 망한다.쪼개야 산다.'

SK가 지난해 말 SK에너지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 주력 3개사에 CIC(Company in Company . 사내 독립기업) 제도를 전격 도입한 이유다.이 같은 파격적 경영 실험을 앞두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CIC 전도사를 자청하며 사내 방송에 '강사'로 깜짝 출연했다.지난 10~11일 전 계열사에 방영된 '2008년 SK,회장에게 듣는다'란 사내 방송에서 150여분 동안 CIC 제도를 포함한 신년 구상을 강연한 것.최 회장은 "사업 부서가 마치 회사인 것처럼 행동하고 관리하고 책임 지는 것"을 CIC의 본질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따로 또 같이'를 표방하며 운영해 온 회사별 자율 경영이 성장 한계를 맞고 있다"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CIC 등 단위조직별로 자율 경영을 해야 고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적 매력과 감성을 앞세운 '최태원표 소프트 파워'가 이날 강의에서도 빛을 발했다는 게 그룹 내 평가다.그는 이날 폭넓은 식견과 유머 감각으로 CIC를 포함한 자신의 경영 전략을 풀어 냈다.강의 도중 자연스럽게 재킷을 벗어 분위기를 바꾸는가 하면 SK글로벌 전략을 묻는 질문엔 20여분 동안 화이트 보드에 직접 그림을 그려 가며 설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탈권위적 모습이 '최태원표 소프트 파워'로 불린다.지난해 재계 대표로 방북했을 때 선배 기업인들의 사진을 일일이 찍어 주고,프로 야구 SK와이번스의 코리안 시리즈 경기 때는 일반석에서 격의 없이 응원하는 모습 등이 노출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SK 관계자는 "새로운 창업과 마찬가지인 CIC 제도의 조기 정착을 위해선 조직원을 설득하고 동감을 이끌어 내는 게 절실하다고 판단해 직접 출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최 회장은 이날 강의에서 CIC 도입의 핵심인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그는 "SK에 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과 성장 조건이며,특히 속도 있는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또 글로벌 경영과 관련해서는 "이제 전리품을 가져와야 한다"고 독려했다.

쥐띠인 최 회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쥐가 어떤 쥐냐"는 방청객의 돌발성 질문에 "영화 '라따뚜이'와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나오는 쥐들"이라며 "이 쥐들은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고 적응해야 하는지와 노력하면 상상할 수 없는 데까지 갈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