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벌린 월가' … 아시아가 구원투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로 시달리고 있는 월가 금융회사들이 한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 손을 벌리며 긴급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한국투자공사(KIC)와 일본 미즈호은행이 메릴린치 자금 지원에 나서는 등 중동 국부펀드에 이어 한국과 일본도 투자은행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그러나 중국개발은행으로부터 20억달러의 투자를 받으려던 씨티그룹의 계획이 중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는 등 자금 수혈이 순탄치만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 주부터 본격 발표되는 미국 기업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도 당초 예상보다 더 악화될 것이란 전망들이 잇따르고 있어 미 경기 침체 우려감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미즈호,메릴린치에 13억달러 투자메릴린치는 KIC,쿠웨이트투자청(KIA),일본 미즈호은행 등으로부터 총 66억달러의 자본을 유치했다고 15일 발표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 2위 은행인 미즈호은행은 1400억엔(약 13억달러) 규모의 메릴린치 우선주를 이달 말까지 인수할 예정이다.

메릴린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자본 확충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지난해 12월에는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으로부터 50억달러를 유치했다.

17일에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메릴린치의 자산 상각 규모는 150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메릴린치는 지난해 3분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투자 손실 등에 따른 자산상각 등으로 93년 역사상 최대인 22억4000만달러의 분기 순손실을 기록했다.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지난해 10월 스탠리 오닐 최고경영자(CEO)를 해고하고 존 테인 뉴욕증권거래소(NYSE) CEO를 선임,사태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씨티 추가 수혈은 '브레이크'

각국 금융기관과 국부펀드들이 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월가 투자은행들의 자본 유치가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씨티그룹은 중국 개발은행으로부터 20억달러를 투자받으려 했으나 중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씨티그룹은 이에 따라 싱가포르투자청(GIC),쿠웨이트투자청,사우디아라비아의 알왈리드 빈 탈리 왕자 등으로부터 145억달러의 자본 투자를 끌어내는 데 만족해야 하는 처지다.

중국 펀드들은 그동안 월가 금융회사 투자에 활발한 편이었다.

모건스탠리는 작년 12월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로부터 50억달러를 유치했다.

베어스턴스도 중국중신증권으로부터 10억달러를 끌어 들였다.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은 작년 5월 CIC로부터 30억달러를 투자받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씨티그룹에 대한 투자에 제동을 건 것은 각국 정부의 경계심리를 의식해 속도조절에 나서기로 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최근 중국이 월가 금융회사 등에 투자를 확대하자 각국 정부는 자금운용의 투명성을 문제삼으며 노골적으로 경계심리를 보이고 있다.

2005년엔 중국해양석유총공사가 미 석유회사인 우노칼을 130억달러에 인수하려다 의회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이와 함께 CIC가 블랙스톤에 30억달러를 투자했으나 이날 현재 31%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도 추가 투자를 망설이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

◆4분기 미 기업 순익 급감 전망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 파장은 4분기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가 14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편입사를 대상으로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을 종합한 결과, 지난해 4분기 미 기업의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9.1% 줄어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1주일 전 같은 조사에서 나온 8.4% 하락 예측보다 더 나빠진 것이다.

특히 신용경색의 타격을 직접 받은 금융회사들의 4분기 순익은 1년 전보다 69% 줄어든 것으로 추정됐다.

금융회사들의 순익이 이처럼 감소하기는 10년 만에 처음이다.애널리스트들은 올 상반기도 상황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기업들의 실적 악화에다 소비마저도 위축조짐을 보이고 있어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박성완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