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고려대 총장 취임 앞둔 이기수 교수

제17대 고려대 총장에 선임된 이기수 교수(63ㆍ법학)는 "우수한 인재만 뽑을 수 있다면 본고사든 수능이든 가리지 않겠다"며 기존의 대학입시 방식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 맞게 어학에 능통한 인재를 기르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이 교수는 "고려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3개국어를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했다.

학교의 경영과 관련해서는 "각 단과대학이 단대별 사정에 맞게 등록금을 인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하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17일 고려대 법인 이사회에서 총장추천위원회 심사 1위를 차지한 염재호 교수(53ㆍ행정학과) 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신임 총장에 선임됐다.제15~16대 총장에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세 번 만에 성공했다.

그는 오는 2월1일 정식 취임한다.

―경영대 자체 행사에 이명박 당선인이 '깜짝 방문'했습니다.신임 총장께서도 그 자리에 계셨는데요.당선인이 특정 학교의 행사에 참석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당선인이 온 것은 자신을 있게 해 준 '원천'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세상에 낳아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사회로 나가게 해 준 곳은 교육기관입니다.

당선인의 경우 출신학교인 동지상업고교(야간)가 없어지는 바람에 고려대가 유일한 모교가 됐습니다.그만큼 각별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타 대학 출신이 보면 고려대만 편애한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수위원회 간사 7명 중 고려대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국무총리도 연세대 출신이 내정됐고요.

최근 김한중 연세대 신임 총장과 함께 당선인을 만났을 때 김 총장에게 당선인 옆자리를 양보하고 저는 다른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고려대 동문은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습니다.뒤에 숨어 비판자 역할을 하죠."

―취임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준비는 다 마치셨나요.

"선임 후 제가 조용하니까 주변에선 총장은 바뀌는데 인사 변화가 없는 것 같다더군요.

하지만 4년 동안 몸과 마음을 바쳐서 일할 사람을 쓰는 데 신중해야죠.

그동안 축적해 온 자료를 바탕으로 처장단 인사를 마쳤습니다.(그는 총장준비 기간 동안 교수,교직원의 개인 신상 정보를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다)공식 발표는 취임식 당일날에 할 생각입니다."

―교내 행정직 교수단이 많이 변하나요.

"각 단과대 학장단은 변화가 없을 겁니다.

다만 주요 행정부처 11개 중에서 산학협력단과 관리처를 제외하곤 싹 다 바꿀 겁니다.

비서실장을 포함해 비서진 구성도 주말동안 구상을 마쳤습니다."

―인재를 선택하는 기준은 뭡니까.

"첫째는 능력입니다.

무엇보다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고대 정신'이죠.지금까지 고대 정신에 대해 정의를 내린 사람이 없습니다.

고려대 설립자 인촌 김성수 선생이 말했던 '공선사후,신의일관'을 고대 정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학교일을 우선시하는 사람,온몸을 바쳐서 일할 사람,신의를 지켜서 같이 갈 사람 등이 고대 정신을 갖춘 사람이죠."

―최근 주요대가 6~10%대의 신학기 등록금 인상률을 발표했습니다.많게는 30%까지 인상하는 곳도 있어 '등록금 1000만원 시대'라는 우려가 큽니다.

"등록금만 놓고 보면 사립대는 인문,사회계열 단과대밖에 운영할 수 없습니다.

기본적인 기자재만 몇십억원씩 하는 공학,의학계열 대학은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정부에서 기본적인 인프라는 지원해줘야죠.

그래도 건물 같은 하드웨어는 대학이 지어야 하니까 등록금만 가지고 대학 운영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현재 국내 대학의 '살림살이'는 각 단과대에서 들어온 등록금을 모아 본부가 다시 재분배하는 식입니다.하지만 단과대별로 재정을 분리해 '독립 채산제'로 운영하면 단대별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단대별로 수입과 지출을 운용하도록 자율권을 줄 겁니다.

등록금도 원한다면 단과대별로 필요한 만큼 책정토록 할 생각입니다.

학생 정원 역시 단과대 학장이 수요에 따라 선발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겸손하게' 표현해서 첫해 기부금 1500억원을 모으겠다고 하셨습니다.1500억원은 겸손하게 말하기에는 큰 금액인 것 같은데요.

"기부금 모금에 대한 접근법을 달리하면 됩니다.

숨은 기부자를 찾는 데 역점을 둘 겁니다.

지난해 고대 병원에서 진료받던 할머니가 400억원 규모의 건물을 기증했습니다.

100억원짜리 건물을 사범대에 기증한 분은 사범대가 좋은 교사들을 많이 배출한 데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고요.

이런 기부는 학교에서 섭외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 나온 것입니다.

결국 교육 내용이 좋으면 숨은 기부자들이 몰리는 것이지요.

이런 숨은 기부자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기부금 모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돈 불리기'입니다.말씀하신 '고대 펀드'는 학교 재테크의 일환일 텐데요.구체적인 방안은 나왔나요.

"고대 펀드에 관한한 전문가인 장하성 경영대 학장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에게 전적으로 맡길 생각입니다.

두 분께서도 기꺼이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국내 대학 중 서울대가 발전기금 운용 수익률이 10% 정도로 사립대보다 높은 수준입니다.예상 수익률을 얼마 정도로 보시나요.

"수익률 17% 정도 예상합니다.(일반 펀드의 수익률을 평균 20% 선이다)"

―한 인터뷰에서 본고사 세대가 수능 세대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꼭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본고사든 수능이든 우수학생만 뽑을 수 있다면 가리지 않겠다는 겁니다.

앞으로 꾸려질 대학입시 정책팀이 제시하는 입시방안을 적극 수용할 겁니다.

다른 행정부처는 거쳤지만 입학관리처장은 한 적이 없어 입시에 관한한 솔직히 잘 모릅니다."

―그 방안이 설사 본고사라도 상관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졸업 때까지 3개 국어를 시키겠다고 하셨는데요.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졸업 전까지 3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요.

"저는 나이 60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 1년 만에 일상회화는 가능할 정도가 됐습니다.

요즘은 중국어도 배우고 있고요.고려대를 들어올 만한 젊은 학생들이 못할 리가 없습니다.

고려대 들어온 학생은 영어는 필수이고,유럽과 아시아권 언어의 일상회화는 할 정도가 돼야 합니다.

3개 국어 구사는 세계인으로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최근 이 당선인은 퇴임 후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습니다.기쁨은 잠시이고 직책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는 의미인데요.비슷한 심경이신가요.

"걱정은 절대 안 합니다.제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있나요?

오직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 수 있는 4년 후의 고려대 모습만 생각하고 있지요.

120세까지 살려고 합니다.그렇게 치면 아직 세 살밖에 안 된거죠.앞으로 60년을 준비하기에도 바쁩니다."

글=성선화/사진=김병언 기자 doo@hankyung.com